청양고추 100배 맵기의 '부트졸로키아'가 들어간 '대박라면 고스트페퍼', 청양고추 200배 맵기의 과자 '원칩 챌린지'….
최근 인터넷에서 관심을 끄는 음식들이다. '대박라면 고스트페퍼'의 경우 국내 신세계푸드가 만들어 말레이시아 시장에만 내놓은 제품을 현지 교민 등을 통해 역(逆)수입, 중고 사이트에서 봉지당 1만5000원에 사고판다. 부트졸로키아는 인도(India)에서 최루탄에 사용되는 식물이다. 미국 식품회사가 '캐롤라이나 리퍼'라는 품종의 고추를 사용해 만든 과자인 '원칩 챌린지'는 더하다. 지난달 한 국내 유튜버가 성인 손바닥 절반 크기인 이 과자를 먹은 뒤 5분간 입을 헹구지 않고 버티다가 응급실에 간 영상은 조회 수 93만건을 기록했다. 이 과자도 국내 인터넷에서 3만~4만원에 팔린다.
20~30대 청년층에서 '극한의 매운맛'을 추구하는 심리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1~2년 사이 중국 매운 음식인 마라(麻辣)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데 이어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식품에까지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인의 매운맛 선호는 서서히 강도(强度)를 높여왔다. 라면류 제품에서 고추에 포함된 화학물질 캅사이신 농도를 측정한 스코빌 지수(SHU)를 비교해보면,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2700SHU, 2012년 불닭볶음면은 4404SHU, 2018년 핵불닭볶음면은 1만SHU, 2019년 핵불닭볶음면미니는 1만2000SHU였다.
경기가 불황이면 매운맛 선호 현상이 강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IMF 사태(1997년 12월)가 터진 1998년, 매운 라면의 대표격인 신라면은 1년 매출이 20% 급등했다. 서울 강남에선 논현동 한신포차가 문을 열어 '매운 닭발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쇼크 때도 주춤했던 라면 소비가 늘었고, 2012년 유럽 재정 위기로 경제성장률이 둔화했을 땐 삼양의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었다. 청년 체감실업률 20%대를 기록한 지난해 청년들은 불닭과 마라 등 매운맛에 열광했다. 작년 편의점 CU의 불닭라면 시리즈 판매량은 2018년보다 23.5% 늘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매운맛 선호 현상을 '스트레스'와 연결 짓는 해석이 많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극심한 취업난 등에 시달리는 N포 세대가 외부에서 오는 고통을 덜기 위해 고안한 나름의 스트레스 처방법"이라고 했다. 취업준비생 박보현(28)씨는 "지난해 구직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라를 찾게 되더라"고 했다.
박씨 이야기는 실제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얘기다. 장춘곤 성균관대 약학과 교수는 "우리 몸은 매운맛을 일종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매운맛을 감지하면 통증을 줄이고,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엔도르핀과 도파민 등을 분비한다"며 "이런 물질은 뇌를 흥분 상태로 만들어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