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1개 경찰서, 연식 30년 이상 15곳 '재건축 대상'
방배서 1976년 준공 '최고령'… 평균 연식 25.8년
"비 새고 합선 위험" "치안수요 증가" "동네 미관 해쳐"
정부 "연식·안전등급·협소도 고려… 예산·신축 등 5년 소요"

"예전 건물은 벽에 금이 가 밖이 보이기도 했어요. 남녀화장실도 공용으로 썼습니다. 지진 오면 무너질거란 우스갯소리도 있었는데, 지금은 생각도 못할 일이죠. 깔끔한 새 청사 쓰니까 민원인들이 제일 좋아합니다."

최근 서울 서부경찰서 경찰들 사이에서 미소가 번지고 있다. 30여 개월 간의 임시청사 생활을 마치고 한달 전 새롭게 건설된 신청사에 입주했기 때문이다. 은평구 녹번동 옛 청사 터에 지어진 서부서는 총 34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4042㎡(약 1200평) 부지에 지하 3층, 지상 7층 규모로 지어졌다.

기존 서부서 청사는 1969년에 준공돼, 신축에 들어간 2017년 당시 건물 나이가 48세였다. 2012년 서부서는 안전진단에서 최하위인 E등급(불량)을 받기도 했다. 2018년 12월 내부 벽에 균열이 가고, 붕괴 위험으로 입주민을 긴급퇴거 조치한 삼성동 대종빌딩도 당시 E등급을 받았다.

그래픽=김란희

최근 오래된 경찰서에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다. 연식 노후에 따른 안전성 문제와 주변 환경과 조화롭지 못한 구식 디자인, 좁은 사무공간과 주차공간 부족에 따른 불편함 등을 지적받으며, 경찰서 신축 공사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6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시내 31곳 경찰서 가운데 준공된 지 30년 이상인 재건축 대상 건물은 총 15곳으로 나타났다. 거의 절반 가까운 경찰서가 신축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이다. 서울 경찰서 청사의 평균 연식만으로도 25.8년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건물 연식이 30년이 이상일 경우, 신축 심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며 "준공연도, 노후도 등을 감안해 순차적으로 재건축 협의가 진행 중에 있다"고 했다.

◇서울 최고령 '44세' 방배서, 강서·혜화·용산·종암도 40세 넘어

서울에서 가장 연식이 오래된 경찰서 청사는 어디일까. 정답은 서초구 방배경찰서다. 방배서는 1976년 준공돼, 올해로 나이가 44세다. 현재 방배서는 4·7호선 총신대입구(이수)역과 2·4호선 사당역 사이 서초구 방배천로 기존 부지에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규모는 지하 2층~지상 6층 건물로, 총 123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했다. 2018년 4월부터 임시청사를 쓰고 있고, 2023년 준공 예정이다.

방배서 관계자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상습 침수되곤 했다. 지하만 그런게 아니라 1층까지도 물이 차고, 물이 차면 소방서 가서 파이프 빌려오고 경찰관들이 물 퍼내고, 그러다보니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도 했다"며 "저수조 설치는 했지만 건물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균열이 많아 물이 들어오기도 하고, 전기 합선 위험도 있었다. 침수가 안되더라도 균열 틈으로 물 들어오면 서류 치우기도 해야하고 번거로웠다"고 했다.

방배경찰서 구축(위)과 신축 디자인 콘셉트(아래)의 모습

이 밖에도 강서서(1977년 준공)와 혜화서(1977년 준공), 용산서(1979년 준공)가 40년이 넘은 곳이다. 종암경찰서는 올해로 딱 40년이 됐다. 이어 중부·종로·서대문·구로(1982년 준공), 동작·서초(1985년 준공), 성동·양천(1987년 준공) 등도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다.

용산서를 찾은 민원인 A씨는 "저녁 시간에 가면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무섭다"며 "안전함을 느끼게 해야할 경찰서가 오히려 위화감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로 준공 30년째가 되는 송파경찰서의 한 간부는 "치안 수요가 늘면서 조직도 커졌지만 오래되고 한정된 건물에서 사람 들어갈 공간 찾느라 애 먹고 있다"고 했다.

송파서는 1100여명으로 서울에서 가장 경찰관수가 가장 많은 경찰서다. 최근 1층 민원실 신축 공사가 끝났는데, 공사 중에 체육관 공간을 사무실로 쓰고 주차장에 임시로 컨테이너 민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신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한 경찰서도 있다. 1969년 지어진 남대문 경찰서는 2011년 구조보강공사 등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다. 남대문경찰서가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결정한 배경에는 예산 문제도 있지만, 남대문서 지하에 있는 유치장을 새롭게 건설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고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많은 일선 경찰서들이 지어진 1980년대 당시보다 인구가 늘고, 경찰관 숫자도 늘어 공간이 비좁아지기도 했다. 2018년 기준 인구는 5163만명으로 1980년 3872만명에 비해 33% 늘었고, 같은 기간 경찰관 수는 5만6003명에서 11만8651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인구 10만명당 경찰관수는 1980년 147명에서 2018년 230명이 됐다.

◇연식 30년 이상 경찰서 재건축 대상… "매년 7개 이상 확충 예상"

경찰서 신축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될까? 경찰청에 따르면 △연식 30년 이상 △안전등급 D등급 이하 △직원·민원인 설문조사 등을 고려해 신축을 결정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오래되고 안전성이 떨어지는 건물 위주로 신축 소요를 제기하면 내부 심사를 통해 대상을 결정한다"며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함께 노후도와 협소도, 사업 추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심사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준공된 서울서부경찰서.

서울시내 연식 30년 이상 경찰서 15곳 중 더 오래된 9곳은 이미 예산이 반영돼 신축을 앞두고 있거나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올해 8월 준공을 앞둔 강서경찰서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 강서서는 인근 빌딩을 임대해 임시 청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 혜화서와 종암서, 중부서, 종로서, 서대문서 등은 설계 단계에 있고, 준공 40년이 넘었지만 아직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용산서는 올해 예산에 반영됐다.

1990년에 준공된 마포서와 송파서도 올해 준공 30년으로 재건축 대상이 됐다. 노원서(1991년 준공), 영등포·도봉서(1992년 준공), 은평서(1993년 준공), 관악서(1994년 준공) 등도 해가 지나면서 차례로 30년을 채울 예정이다. 2000년 이후 지어져 비교적 새로 지은 건물은 강북서 등 9곳이었다.

노후 청사 개선 및 신축 사업을 위해선 국가기금(국유재산관리기금)이 투입된다. 매년 3000억원가량 편성되는데, 이에 한 해 평균 7개 정도의 경찰서가 신축 대상에 포함된다. 경찰서 1곳 당 재건축 예산은 위치와 규모에 따라 100억원~400억원 규모다. 이후 조달청을 통해 시공사를 입찰로 선정하게 된다.

경찰청이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공고를 낸 서울 시내 경찰서 신축 관련 공사 내역

다만 예산이 편성됐다고 바로 공사가 시작되는게 아니다.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부지 선정, 건축 설계 공모, 공사 인허가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통상적으로 5년 정도가 걸리지만, 각종 절차가 늦어지면 상황에 따라 1~2년 정도 더 들 수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서 노후화에 따른 민원인 불편과 경찰관 생산성 저하 등을 인지하고 있다"며 "더 많은 경찰서를 신축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