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서울시 주택정책에 미칠 영향에 수요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익’과 조합의 ‘사익’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던 재건축 사업장이 많은데, 공익에 무게중심을 둔 방향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주택가격 안정·사회적 형평’이 우선
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재건축 사업으로 발생한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징수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지난해 말 합헌 결정을 내린 주된 이유는 3가지다.
헌재가 가장 먼저 언급한 건 재건축 부담금이 ‘공적 과제’라는 점이다. 헌재는 공적 과제의 실례로 ‘주택가격의 안정’과 ‘사회적 형평’을 들었다. 재건축 사업으로 생기는 초과이익을 소수가 사유화하면서 소득구조의 불균형과 계층 간 갈등, 주택가격의 폭등이 발생하는 것을 재건축 부담금 제도가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헌재는 재건축 부담금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가 실현되는 공익에 비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재건축의 애초 목적은 개발이 아니기 때문에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은 별개라 재건축 사업에만 부담금이 적용되는 게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리적 근거 얻은 서울시, 정비사업 전체 적용 가능성
재초환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 파장은 재초환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정비사업의 인·허가권은 대부분 서울시가 쥐고 있는데, 헌재의 판단이 앞으로 서울시가 새로 추진할 정책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추진하는 임대주택 정책이 그렇다. 재건축 사업에는 임대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의무가 없다. 하지만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는 지금도 조합을 대상으로 임대주택 건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이미 있었다. 용산구 이촌동 ‘왕궁아파트’의 경우 애초 250가구로 1대 1 재건축을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서울시가 기부채납시설로 임대주택을 지으라고 요구하며 임대주택 50가구를 포함한 300가구로 짓기로 했다.
앞으로는 이런 움직임이 더욱 적극적이고 공식적으로 바뀔 수 있다.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이 조합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 상황이라서다.
주택 가격 안정을 명분으로 재건축을 사실상 중단시키는 조처를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도 있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의 경우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내놓은 설계안이 번번이 ‘퇴짜’를 맞다 서울시 요구대로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설계안을 마련했지만,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시장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서울시 판단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사전 공공기획을 통해 층수와 높이, 건축 디자인, 임대가구 비율과 관련한 정비사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도시 경관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공익에 미흡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사업 문턱조차 넘기 어려울 수 있다.
재건축뿐 아니라 재개발사업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멀쩡히 추진되던 사업이 공익을 이유로 멈춰 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을지면옥이나 양미옥 등 노포와 공구상가들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와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의 재개발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사례가 이미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재건축 안전진단강화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조항과 함께 ‘재건축 4대 족쇄'로 불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합헌 결정이 나면서 개발 이익이 확실히 줄게 됐다"면서 "내심 위헌 결정이 나기를 기대했던 수요자들의 실망감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시의 주택정책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합헌 결정으로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가장 우려되는 점은 주택시장 분위기에 따라 서울시가 정비사업 인·허가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수급의 균형이 깨져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