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한국 시각) 열린 NFL(미 프로풋볼) 애틀랜타 팰컨스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2019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는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였다. 팰컨스는 연장 끝에 28대22로 이겼다. 승리의 주역은 필드골 5개와 보너스 킥 1개를 포함해 16점을 책임진 키커 구영회(25)였다. 구영회는 따로 영어 이름 없이 자신의 이름을 'YOUNGHOE KOO'로 쓴다.

2017년 LA 차저스에서 방출당한 구영회는 와신상담 끝에 이번 시즌 애틀랜타 팰컨스 유니폼을 입고 NFL 정상급 키커로 올라섰다. 사진은 지난 15일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전에서 필드골을 시도하는 구영회.

풋볼에선 세 번의 공격 기회에서 10야드를 전진하지 못하고 골 포스트까지 50야드 이하로 남아 있을 경우 네 번째 공격 때 보통 3점짜리 필드골을 시도한다. 이날 19―22로 뒤진 상황에서 3번째 공격에 실패한 팰컨스는 경기 종료 3초를 남기고 구영회를 호출했다. '강심장' 구영회의 33야드짜리 필드골이 골 포스트 사이를 통과하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들어갔다. 반면 상대 팀 키커 매트 게이는 이날 필드골 3개를 모두 놓쳤다. 양 팀 키커의 기량에서 승부가 갈렸다.

팰컨스에 승리를 안긴 남자

올 시즌 구영회는 팰컨스에 '복덩이'와 같은 존재였다. 2017년 수퍼볼 준우승팀 팰컨스는 이번 시즌 초반 8경기를 1승 7패로 출발했다.

그러다 구영회가 새로 합류한 10주 차 경기에서 팰컨스는 우승 후보 뉴올리언스 세인츠를 26대9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구영회는 이 경기에서 필드골 4개 등 6개의 킥을 모두 적중했다. 이 활약으로 그는 '이 주의 스페셜팀 선수'로 뽑혔다.

구영회는 14주 차 캐롤라이나 팬서스전에서도 8개의 킥에 모두 성공해 또 한 번 '이 주의 스페셜팀 선수'에 선정됐다. 팰컨스 선수가 한 시즌 두 번이나 뽑힌 것은 2001년 이후 처음이었다. 팰컨스는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엔 실패했지만, 후반기 6승2패로 살아나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구영회는 올 시즌 8경기에서 필드골 26개 중 23회를 성공했다. 경기당 필드골 시도(3.2회)와 성공(2.9회) 횟수 모두 리그 전체 1위였다. 그만큼 주어진 기회가 많았고, 승부사답게 이를 잘 살렸다.

온사이드킥의 달인

구영회는 지난달 세인츠와의 13주 차 경기에선 절묘한 온사이드킥으로 전국적인 조명을 받았다. 온사이드킥은 킥오프 상황에서 공을 상대에게 차주지 않고 공격권을 계속 유지하고 싶을 때 시도하는 일종의 '도박'과 같은 플레이다. 키커가 찬 공이 바닥에 닿은 상태로 10야드 라인을 넘겨서 굴러가면 그 공을 먼저 잡는 팀이 공격권을 갖는다. 하지만 공을 찬 팀이 공격권을 다시 가질 확률이 6~7%에 불과해 거의 시도하지 않는 작전이다.

그런데 구영회는 세인츠전에서 세 번 연속 온사이드킥(한 번은 페널티로 취소)으로 공격권을 가져오는 묘기를 부렸다. 현지 중계진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구현서(55)씨는 "온사이드킥은 공이 통통 튈 수 있도록 발 기술을 부려야 하는데 아들이 어린 시절 축구를 한 덕분인지 잘하더라"고 말했다.

좌절을 딛고 이제 성공으로

서울 태생인 구영회는 12세 때 어머니가 미국에 직장을 구하면서 뉴저지로 건너갔다. 공을 멀리 세게 차는 데 재능이 있었던 그는 조지아 서던대학교에 진학해 '루 그로자 어워드(대학 최고 키커상)' 후보에 오를 만큼 인정받았다. 2017년 LA 차저스에 입단하며 꿈의 NFL 무대를 밟았지만, 4경기에서 필드골 6개 중 3개를 놓치며 방출당했다.

구영회는 절치부심하며 NFL 재입성을 노렸다. 차저스에서 구영회에 밀려 팀을 떠났던 조시 램보(29)가 잭슨빌 재규어스에서 성공하는 모습에 더욱 이를 갈았다고 한다. 지난 2월 4년간 1550만달러(약 179억원)에 재규어스와 계약한 램보는 올 시즌 필드골 성공률 97.1%의 리그 최고 키커로 올라섰다.

구영회는 NFL 첫 시즌 때 요령 없이 강하게만 찬 공이 빗나가며 자신감을 잃었다. 그는 차저스에서 방출된 뒤 실패를 거울 삼아 공에 발을 대는 지점과 발사각, 회전 등을 보완해 완벽한 폼을 찾아나갔다. 올해 초 신생 리그인 AAF 애틀랜타 레전드에서 뛴 것이 큰 경험이 됐다. 구영회는 14개의 필드골을 모두 성공하면서 NFL 팀들의 관심을 끌었다. 결국 팰컨스가 구영회를 데려갔고, 구영회는 기대에 보답했다.

올 시즌 리그 정상급 키커로 올라선 구영회는 다음 시즌에도 팰컨스에서 뛸 가능성이 크다. 구현서씨는 "키커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는 NFL에서 올해는 아들이 경쟁력을 입증한 시즌이 됐다"며 "최대한 빨리 계약을 맺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