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대형 서점 반스앤드노블. 계산을 마친 점원이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고 인사를 건넸다. 저녁에 들른 대형마트 세이프웨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미국에서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란 인사를 듣기 어려워지고 있다. 산타클로스 대신 인공지능(AI)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는 어린이도 늘고 있다. 미국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17일 폭스뉴스 방송에 출연한 닐 고서치 대법관은 앵커의 '굿모닝'이란 인사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답했다가, 소셜미디어에서 "사퇴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최근 화두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영향이다. 인종·성별·종교 등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움직임이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특정 종교의 행사인데 이를 연말 인사로 통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대신 유대인의 축제 '하누카'(Hanukkah·12월 22~30일), 흑인의 축제 '콴자'(Kwanzaa·12월 26일~1월 1일)까지 포함해 '해피 홀리데이스'로 뭉뚱그려 부르자는 주장이다.

유대인 축제인 ‘하누카’ 등을 배려해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스’라고 적힌 크리스마스카드.

미국에선 인사말만으로 정치 성향까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다. 미국 공공종교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연말 인사로 공화당 지지자 67%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민주당 지지자 66%는 '해피 홀리데이스'를 선택했다. 공화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 백인 기독교인층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후보 시절 "내가 대통령이 되면 '메리 크리스마스'란 인사를 되찾아 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인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이 24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오바마 부부의 '연말 카드'에는 크리스마스 대신 '홀리데이'란 단어가 쓰였다.

NBC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면 중서부에 사는 60세 이상의 공화당원, '해피 홀리데이스'라고 인사하면 북동부에 사는 18~29세 젊은 여성 민주당원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의 낭만도 사라져가고 있다.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던 미국 아이들이 이제는 '알렉사(Alexa)'란 산타를 가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이들이 부모 대신 아마존의 인공지능 알렉사에 "나 젤리 100개 사줘"부터 심지어 "테슬라 전기차 사줘"까지, 온갖 소원을 쏟아내는 바람에 부모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문제는 알렉사가 아이들의 소원을 재깍재깍 아마존에 주문한다는 것. 아마존의 알렉사 AI는 스피커, 냉장고, 자동차 등 1억대 이상의 기기에 탑재돼 있다.

부모들은 난데없이 밀려드는 크리스마스 택배 상자에 깜짝 놀라 AI 스피커 설정에서 '음성 쇼핑'을 금지하는 등 긴급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알렉사 산타'에 300달러(약 35만원)어치의 각종 선물을 주문한 7세 루시(Lucy)양은 천진난만하게 "난 모든 게 공짜이고, 내가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는 줄 알았어요"라고 WSJ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