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 우(牛)시장의 한일 상가(앞쪽 4층 상가) 모습. 한일 상가 상인들은 지난 9일 건물주로부터 “내년 5월 30일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우(牛)시장을 더 좋게 만들어주는 사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시장 상인을 내쫓는 사업이었네요."

서울 금천구 '독산동 우시장' 내 한일상가에서 15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모(54)씨가 25일 오후 가게에서 고기를 썰며 힘없이 말했다. 이 시장 입구엔 반짝이는 황금빛 황소 동상이 서 있었다. 밤이 되자 동상 옆에 설치된 '독산동 우시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쇠푯말에 불도 들어왔다.

서울시는 2017년 2월부터 시장 일대 시설을 개선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올해 4월에는 국토교통부가 '도시재생 뉴딜 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하고, 2024년까지 우시장 일대 약 23만㎡에 국비 150억원, 시비(市費) 225억원을 들여 환경을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우시장을 중심으로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날 만난 우시장 상인들은 시장에서 쫓겨날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독산동 우시장은 상점 170여곳이 대형 상가 건물 네 동(棟)에 걸쳐 자리를 잡고 영업하는 구조다. 이 상가 건물들 가운데 한 곳인 '한일상가' 상인 30여 명은 이달 9일 건물주에게서 "기존 상가를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 하니 내년 5월까지 가게를 모두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머지 상가 건물 3곳에 입점한 상인들도 "언제까지 장사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눈에 띄는 매출 증가나 시설 개선은 없는데, 땅값이 들썩이고 민원만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독산·가산·시흥동 3개 동만으로 이뤄진 금천구 아파트 가격은 최근 1년간 2.7% 올랐다. 서울 전체 평균 아파트 값 상승률(1.8%)을 웃돌았다.

상인 박모씨는 "동네가 좋아지면 지역 주민들은 물론 외부에서도 손님들이 대거 몰려 '대박'이 날 거라 기대했는데, 현실은 정반대"라고 했다. 독산동은 '롯데캐슬골드파크 1~3차' 아파트 4400가구가 2016년 말부터 차례로 들어서면서 '새 아파트촌'이 됐다. 그곳에 중산층이 유입되자 민원이 급증했다. 주로 소 피비린내와 미관 등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한 상인은 "소 내장 등 부속물을 취급하다 보니, 탁자를 도로에 내놓고 작업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단속이 들어온다"고 했다. 다른 상인은 "단속하면서도 작업 방식을 개선할 지원 같은 건 없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도시재생으로 환경이 개선되면 정육점 같은 기피 시설이 밀려나는 것은 도쿄의 수산물시장, 뉴욕의 정육점거리 등에서 여러 번 경험한 현상"이라며 "우시장을 중심으로 도시재생 한다는 정부 계획은 처음부터 환상에 불과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