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에 한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한 단어를 계속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아마도 중국어를 조금 공부해서 그런지 ‘열심히’란 단어가 자주 들렸습니다. 영한사전을 보면 이 단어는 ‘부지런하다(diligent)’로 번역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이 사전적 의미는 열의[熱·열]와 전심[心·심]을 다한다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열심히는 한자로 이뤄진 단어임에도 한국에서 주로 사용되고 중국어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전형적인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통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고, 다른 사람들도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하도록 응원하는 한국인들의 열정을 처음 접했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계속 놀라면서 즐기고 있는 것은 언어의 가변성과 표현성입니다. '열심히'처럼 문자 그대로의 번역을 할 수 없는 뉘앙스도 있고,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서정적인 문구도 있습니다. 한국어의 고유한 점은 수식어를 붙여서 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형, 과거형, 미래형 등 문법적 시제에 제한돼 '갖고 싶어요' '원해요'라는 말을 붙여 사전적으로 말하던 수준에서, 이런 인간의 기분과 의도를 전반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구조를 알게 됐던 배움의 기쁨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스티븐스 前주한미대사

예를 들어 저는 "할까 말까 생각 중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할까 말까'란 구를 배운 후 과도하게 사용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멜로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언어로도 전달하기 어려운 모호성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말 중에 즐겨 사용하는 것이 '하나마나'란 문구입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의미 없다'에서 '과잉이다'까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어휘를 연구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원어민이 아닌 사람은 마음속에서 그것을 사전적으로 번역하기 때문에 실제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뜻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인 사용과 문법을 모방하면서 그 뜻을 익혀야 합니다. 그냥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