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포용성·개방성을 기초로 어떤 지역 구상과도 접점 모색"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가진 회담에서 시 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자신이 추진하는 신남방·신북방 정책과의 연계 가능성을 거론했다. 일대일로는 중국 주도의 신실크로드 구상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서울에서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의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두 패권 국가의 핵심 외교 전략에 모두 협력하겠다고 한 것이다.
◇文대통령 "中 일대일로와 신남방·신북방 협력 토대로 시너지 효과 기대"
문 대통령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 주석과 회담에서 "시 주석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한국의 신남방·신북방정책 간의 연계 협력을 모색키로 합의한 이후 최근 구체적 협력 방안을 담은 공동보고서가 채택됐다"면서 "이를 토대로 제3국에 공동진출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협력 사업들이 조속히 실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 구상이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신북방 정책과 협력할 부분이 있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일대일로는 시 주석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중국 주도의 세계 패권 전략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서진(西進)하는 육상 실크로드(一帶)와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연결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를 통해 지역적 영향력을 확장함으로써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앞세워 급속하게 세력을 넓혀가자,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았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은 인도와 일본, 호주 등 태평양 지역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일대일로 구상엔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선 "한·중 양국은 운명공동체의 관계"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文대통령, 美에는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 조화·협력 추진"
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에 대해선 언급을 피해왔다. 그러다 지난 6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회담에서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의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조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한·미 양국은 지난달엔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 간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제목의 설명서를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설명서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한·미는 양국 간 미래지향적 동맹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취지에 따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 간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 저울추가 미국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이날 시 주석과 만남에서 신북방·남방 정책과 일대일로 구상의 협력을 다시 언급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상당한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제3국의 중재가 사실상 불가능한 양대 패권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잖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국이 외교 전략 수립 과정에서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심 축은 확실히 잡아야 한다"면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중간에 서있으려고 하면 중국의 한국 흔들기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정부는 어떤 지역 구상과도 우리의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중심으로 접점을 모색하려고 한다"며 "포용성·개방성·투명성·국제규범에 대한 존중 등 우리의 역내 협력 원칙을 기초로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