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뮤지컬·연극계는 '웰메이드 창작물'이 눈에 띄었다. 작년 '미투 운동' 이후 공연계에 분 여성주의 바람도 공고해졌다. '젠더프리' 이슈가 두 장르를 관통하기도 했다.
◇창작뮤지컬 제작 활발
몇 년 동안 대형 창작뮤지컬 제작을 이끌어온 EMK뮤지컬컴퍼니와 연출 왕용범 연출·작곡가 이성준 콤비의 활약은 올해도 이어졌다.
EMK는 뮤지컬스타 카이·김준수를 앞세우 '엑스칼리버'를 흥행시켰다. 왕 연출·이 작곡가 콤비는 대표작 '벤허'를 재공연한데 이어 최근 동명 영화가 바탕인 '영웅본색' 초연을 올렸다.
동명 드라마가 바탕인 '여명의 눈동자'는 투자사기 피해를 입어, 무대 규모를 줄이고 예정보다 3주가량 늦게 개막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런웨이 무대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 배우 열연의 시너지로 호평을 들었다. 이에 힘 입어 내년 1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재연한다.
소극장 뮤지컬 중에서는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이야기를 다룬 '사의 찬미', 18세기 해적의 황금시대를 다룬 '해적' 등이 대학로 흥행을 이끌었다.
시조를 국가이념으로 삼은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랩 등이 흥겹게 어우러진 '스웨그 에이지', 두 수학자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여정을 그린 '시데레우스' 등은 독특한 소재와 완성도로 눈길을 끌었다. 두 여성 작가의 약진도 눈에 띈 해였다. '나빌레라' '이토록 보통의' 등 웹툰을 뮤지컬로 적절하게 옮긴 박해림, '최후진술' '미아 파밀리아' '해적'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귀환' 등 다양한 장르를 연달아 선보인 이희준 작가 등이다.
이 작가, 김동연 연출, 박정아 작곡가가 작년 '신흥무관학교'에 이어 제작에 참여한 육군본부의 '귀환'도 주목할 만하다. '엑소'의 시우민 등 군 복무 중인 아이돌이 대거 출연하며 크게 주목 받았다. 앞으로 군 뮤지컬 제작의 연속성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대형 라이선스 흥행 이끌어
올해도 흥행은 대형 라이선스물을 중심을 이뤄졌다. 신시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로 스웨덴 팝 그룹 '아바'의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이아!'는 2004년 초연 이후 올해 누적 관객 200만명을 넘겼다. 신시컴퍼니가 다섯 시즌을 이어온 디즈니 씨어트리컬 프로덕션의 뮤지컬 '아이다'는 오리지널 버전의 마지막 무대로 눈길을 끌고 있다.
오디컴퍼니의 대표 라이선스물인 '지킬앤하이드'와 '스위니 토드'는 뮤지컬스타 트로이카로 통하는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를 앞세워 흥행몰이를 했다.
EMK의 대표 흥행작인 '레베카'도 연말에 올린 다섯 번째 시즌에 옥주현·신영숙·장은아·알리를 내세워 흥행하고 있다. 넌레플리카 라이선스 초연한 '시티 오브 엔젤'은 국내에 낯선 블랙코미디 탐정 누아르물로 신선함을 안겼다.
내한공연의 장르물도 다양했다.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킹'은 부산, 서울 등에서 공연하며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동명 영화가 바탕인 '스쿨 오브 락'은 아역들의 연주 실력과 안정된 연기력으로 호응을 얻었다.
셰익스피어 시대를 배경으로 뮤지컬 기원을 상상한 뮤지컬 '썸씽로튼'은 각종 뮤지컬 패러디와 기발한 연출로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 작품은 라이선스를 추진 중이다.
연말에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대표작 '오페라 유령'의 월드투어가 7년 만에 내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했는데 드림씨어터는 '라이온킹' 등을 올리며 그간 뮤지컬 불모지로 통한 부산 시장을 들썩이고 있다.
사드로 인한 한한령의 영향이 여전한 상황에서도 뮤지컬의 중국진출은 활발했다. 특히 올해 '총각네 야채가게' '마이 버킷 리스트' '난쟁이들' '빈센트 반 고흐' '랭보' '심야식당' 등 11개 작품이 현지에서 라이선스 공연했고 내년에는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여성 중심 서사·젠더 프리
작년 초반 미투 열풍 이후 대학로에 여성 서사가 중심이 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그 경향이 공고해졌다. '호프: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난설' '테레즈 라캥' '마리 퀴리' '낭랑긔생' '섬: 19333~2019' 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컬계와 연극계에 공통적으로 분 바람은 '젠더프리'다. 뮤지컬계에서는 '해적' '도리안 그레이', 연극계에서는 '오펀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대표적이다.
특히 대학로 소극장 연극의 흥행을 이끈 '오펀스'는 정경순, 최유하, 최수진 등 여성배우들로 구성된 조합으로 남성으로 설정된 캐릭터를 전복시키고 이야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는 평을 받는다. 작년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이어 여성 배우들만 나오는 연극 '메리 제인'도 주목 받았다.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동명 여성주의 소설을 각색한 김수정 연출의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여자가 아이를 낳고 사회 활동을 하며 남자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 나라를 배경으로 전복적인 콘텐츠를 선보였다.
성전환,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인 연극 '후회하는 자들', 드랙퀸을 소재로 한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도 관심을 받았다. 또 다른 소수자인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선 '두산연강예술상' 공연부문 수상자인 이연주의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도 주목 대상이었다.
독특한 형태의 작품도 큰 호응을 얻었다. 네덜란드 인터내셔널 씨어터 암스테르담의 이보 반 호브 연출의 연극 '로마비극'은 5시간30분짜리 대작으로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보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다.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2019 : 아파트'의 '포스트 아파트', 21일 개막하는 '위대한 개츠비'는 몇 년 전부터 공연계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이머시브' 형태도 눈길을 끌었다.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는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공연장에서 벗어나는 공연 구성이 이머시브다.
마크923의 '그을린 사랑', 전화벨이 울린다의 '이게 마지막이야'(이연주 작, 이양구 연출), 남산예술센터·공연창작집단 뛰다의 '휴먼푸가', 서울시극단의 '와이프', 극단 돌파구의 '날아가 버린 새', 극공작소 마방진의 '낙타상자', 두산아트센터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극단 인어의 '빌미', 국립극단의 '스카팽', 극단 골목길의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 등은 여러 평론가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 받은 연극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