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아웅산 테러 당시 장차관급 공식 수행원 가운데 유일하게 목숨을 건졌던 이기백(李基百·88·작은 사진) 전 국방부 장관이 16일 오전 9시 20분 별세했다.
이 전 장관은 1983년 합참의장 재직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수행원으로 미얀마 아웅산 묘소 참배 때 북한 공작원의 폭탄 테러로 부상했다. 당시 수행원과 보도진 18명 중 이 장관만이 생존했다. 고인은 머리와 배에 파편이 박히고 다리를 크게 다쳤지만, 정복 가슴에 단 합참휘장이 파편을 막아내 살았다. 당시 중위였던 그의 부관(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달려가 고인을 둘러업고 구조한 일화가 있다. 이 전 장관은 10시간 이상 수술 끝에 깨어나 부관에게 "대통령은 무사하시냐"고 질문했고, 이는 군인의 표상으로 회자됐다. 그의 정복은 육군사관학교에 기증돼 육사 박물관에 전시됐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아웅산 묘소 참배 3분 전에 장차관 등 수행원들이 묘소 앞에 두 줄로 도열해 있었는데, 갑자기 '쾅' 하는 굉음이 들리면서 의식을 잃었다"며 "부관이 부축해 일어나보니 하체는 무너진 지붕 더미에 완전히 깔렸고 옆에는 장차관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테러 직전 서석준 부총리가 위치를 잘못 서는 바람에 나는 당초 계획과 달리 오른쪽 끝에 서게 됐는데, 폭탄 3개 중 왼쪽 것만 터져 나만 살았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의 만행은 동서고금에 없던 일인데 국내 좌파 세력은 아직도 북한 체제를 편들고 있다"고도 했었다.
아웅산 테러는 1983년 10월 9일 북한 공작조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폭탄을 터뜨려 서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장관 등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다친 사건이다. 이 전 장관은 당시 생존자로서 북한의 만행을 폭로했고, 테러 발생 31년 만인 2014년 미얀마에 순국사절 추모비를 건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31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2년 1월 육사 11기로 입교한 뒤 1955년 9월 군 생활을 시작했다. 1군단장, 제2작전사령관, 육군참모차장에 이어 19대 합참의장과 24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지만, 11기가 주도한 군내 사조직 '하나회'에 가입하지 않았다.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국선장, 보국훈장 통일장 등 다수 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전경연씨와 딸 이재영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12시, (02)2258-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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