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지 위에 음표와 쉼표가 있다. 음악에서 음표와 쉼표는 글에서 글자와 띄어쓰기다. 다양한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글자가 글자 사이의 공간인 띄어쓰기와 함께하듯 여러 기호와 더불어 쓰이는 음표와 그 사이 자리 잡은 쉼표는 바늘과 실처럼 같이 다닌다.
쉼표는 음표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자체로 감동을 전하는 훌륭한 도구다. 음표로 가득한 음악의 절정 앞에 놓인 쉼표는 태풍의 눈 같은, 극도로 긴장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폭포수처럼 터질 눈물을 잠시라도 꼬옥 묶어둘 수 있는 건 음표가 아니라 쉼표다.
또한 쉼표는 소리를 표현하는 또 다른 '음표'다. 무대 위로 한 피아니스트가 올라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하지만 그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아무 건반도 누르지 않은 채 가만히 있기만 한다. 째깍째깍 시간은 흐르고 어리둥절한 관객들은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본다. 저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연주 전 긴장 때문에 아직도 숨을 고르는 걸까.
연주회장을 가득 메운 어색함과 궁금함은 그러나 눈 녹듯 사라지면서 어느새 따스한 고요와 평화가 그 자리를 채운다. 피아니스트는 정확히 4분 33초가 지난 후 뚜껑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에게 인사한 뒤 무대를 내려왔다. 이 '연주 아닌 연주'엔 쉼표가 만들어낸, 오직 관객들 침묵과 연주회장이 만드는 우연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20세기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란 작품이다. 턴테이블에 올린 레코드판 가장자리에 바늘을 살포시 놓으면 들을 수 있는, 2~3초간 듣기 좋은 잡음을 모아서 듣는 느낌이랄까.
언제부턴가 인생의 쉼표들은 단지 바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 의미 없는 침묵이 되어버렸다. 우리 내면 깊은 곳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침묵의 시간이 그립다. 활기찬 내일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쉼표도 좋고, 오로지 휴식만을 위한 쉼표도 좋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다. 잠시나마 내 음악 속 쉼표, 인생 쉼표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