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91.8%는 도시에 살고 있다. 국내 도시인구 비율은 1960년 39%에 불과하던 것이 10년 뒤 50%로 늘었고, 2005년 90%를 돌파했다. 20세기 후반 한국의 산업화와 고도성장은 곧 도시의 발전사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주민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85년 235만원에서 2017년 3806만원으로 16배가량 증가했다. 국민 대다수가 사는 도시의 경제력, 디자인·환경·관광자원 같은 도시 인프라 경쟁력은 곧 국가 경쟁력을 뜻한다.
지난달 25일 열린 조선일보 100년 포럼은 '도시의 미래와 경쟁력'을 주제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서울 등 주요 도시는 단기간 빠르게 발전했지만, 장기적 안목의 도시 정책이 없고 상징적 도시 문화도 부족하다"면서 "뉴욕·파리·도쿄 같은 대도시처럼 도시를 '스마트 고밀화'하는 방향으로 개발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고령화 등 사회 변화에 맞춰 주민 계층 간 양극화 등 미래 도시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스마트 고밀화가 대세… 서울은 제자리걸음"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제패한 국가는 로마·파리·뉴욕 등 당대에 가장 고밀화한 도시를 만들었다"며 "우리는 온돌 구조에 따른 건축적 제약으로 고밀화한 도시를 갖지 못했고, 이로 인해 근대화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혁신이 도시와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미래 도시 모습을 바꿀 핵심 기술로 3D 프린터와 자율주행차를 꼽았다. 유 교수는 또 "종전의 아파트로 가득 찬 획일적 도시 모습을 새롭게 바꾸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계층 갈등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며 "고밀화한 도시 속에 지금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공원과 벤치 등을 설치해 시민이 함께 걸어 다니면서 부딪치고 소통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건축가는 뉴욕 허드슨 야드, 도쿄의 마루노우치·시오도메 재개발 등을 거론하며 "세계 유력 대도시들은 도심 복합 개발로 더욱 진화하고 있지만, 서울은 용산국제업무단지 개발이 무산되면서 도시 업그레이드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장기 기획이 없는 상태에서 건축법이 도시를 만드는 맹점에 빠져 있다"며 "국제 경쟁력을 가지려면 도시 디자인과 건축의 미래 담론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행정적 조율기구와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도 세계적 도시를 만들어냈다는 긍정 평가도 있었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표준화에 기반한 신속·효율성 덕분에 한국의 도시들은 수십년 짧은 기간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서울 같은 세계적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성장·고령화에 따른 도시 문제 대비해야"
이날 포럼에선 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 경제,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사회 변화에 따른 도시 문제 해결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왕건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장은 "첨단 기술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시장이 양극화하면 생산성이 낮은 사람에겐 도시가 지옥이 될 수도 있다"며 "경제성장이 무뎌져 대규모 도시 개발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 추세에 속도가 붙을 수 있는 만큼 노후 산업단지와 빈 점포, 철도·항만 시설 등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정창무 서울대 교수는 "도시는 삶을 영위하는 주요 생산수단으로 사회가 급격히 변할수록 사람들은 대도시로 몰려든다"며 "고령화와 계층 양극화 등으로 예상되는 미래 도시 문제를 재난 관리 차원에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어디서 일하느냐가 소득 차이를 만든다"면서 "고급 일자리가 대도시에 집중된 상황에서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을 고집하는 것은 과거식 정책 같다"고 했다. 염재호 조선일보 100년 포럼 대표는 "지방에 좋은 고등학교를 유치하는 등 교육 여건을 획기적으로 바꿈으로써 중소도시의 부활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웅 서울예대 교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하면 '태양의 서커스'를 떠올리듯이 도시를 상징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