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에 사는 김성민(가명·18)군은 3년째 불법 도박사이트 총판(총판매업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할은 회원 모집이다. 도박사이트 접속이 잦았던 그는 도박업체로부터 총판 역할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신규 가입자가 추천인으로 김군을 적어내면 ‘꽁머니(공짜 게임 머니)’를 받고, 김군은 회원 한 명을 가입시킬 때마다 5000~1만원씩 수고비를 받는다. 김군은 “중학생, 고등학생친구에게 가입을 권했다”며 “총판을 맡은 뒤 매달 100만원 정도 번다”고 말했다.
청소년 불법 도박이 심각해지고 있다. 김군처럼 사실상 불법 도박 브로커로 활동하는 청소년이 생겨날 정도다. 도박자금을 구하기 위한 청소년범죄도 속출하고 있다.
◇게임 형태, 쉽고 재밌어 순식간에 중독
도박에 빠진 청소년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7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10대 도박중독 치료서비스 이용자는 2015년 168명에서 지난해 1027명으로 급증했다. 3년 새 6배나 늘어난 것이다. 전 연령대 가운데 10대의 증가세가 가장 가팔랐다.
청소년이 주로 빠지는 도박은 재밌고 쉬운 게 특징이다. 결과도 빨리 나온다. 캐릭터를 소재로 한 레이싱이나 사다리게임 등으로 캐릭터 외형을 바꾸거나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게임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게임을 한 번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3분 여. 도박액은 5000원 정도부터 시작한다.
도박사이트에 접근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이름과 생년월일,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가입이 완료된다. 복잡한 인증절차가 없어 미성년자인 청소년에게도 장벽이 낮다.
이런 게임은 서버를 해외에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청소년들은 '걸리지 않는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학교폭력·소년법 담임교수는 "해외에 서버를 둔 도박사이트는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며 "청소년들은 불법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사이버 도박을 계속한다"고 했다.
◇도박업체, 청소년을 바람잡이로
청소년은 주로 주변 친구들 권유로 도박에 발을 들인다. 고등학교 1학년 전수민(경기 광명)군은 "친구가 사다리 게임에 3만원을 투자해 36만원을 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얘기에 혹해서 도박에 발을 들이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도박업체는 한번 발을 들인 청소년을 다단계 조직처럼 관리한다. 김군처럼 총판 역할을 할 청소년을 뽑아 점(点)조직을 꾸리고, 총판을 중심으로 지인을 차례로 가입시키며 피라미드처럼 조직을 확장하는 것이다.
도박에 빠져든 청소년이 모집책 역할을 넘어 사이트 운영에 깊이 개입하는 사례도 있다. 도박판의 '바람잡이' 역할을 한다. 실력이 좋아 돈을 많이 따는 사용자가 있으면 인터넷 채팅창에서 일방적으로 매도해 발을 빼게 하기도 한다. 도박업체는 실력 있는 사용자가 적을수록 큰 이득을 얻는다.
김종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서울남부센터 예방치유팀 선임은 "도박 참여자들이 잃는 돈이 많을수록 바람잡이 청소년이 받는 돈은 커진다"며 "게임 한 번에 30만~100만원까지 쥐여 주며 청소년을 유혹한다"고 말했다.
◇초등생도 대리 베팅… 2차 범죄 노출될 수 있어
도박에 빠진 청소년이 늘면서 도박자금을 구하려는 청소년 범죄도 심각해졌다. 이들은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고 중고 거래 사기, 갈취, 불법 대출 등으로 자금을 확보한다. 심지어 부모의 공인인증서를 빼내 은행 거래를 하기도 한다. 중·고생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도박 참여자의 연령이 낮아지면서 초등학생도 형들에게 돈을 주고 대리 베팅을 한다. 이들도 2차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정부도 손을 놓고만 있는 건 아니다. 국무총리직속 사행산업 관리기구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시·도교육청에 청소년 도박 문제 예방 교육 실시와 관련한 조례 제정을 권고했다. 그 결과 11월 현재 16개 시·도교육청이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각급 학교에서 좀 더 체계적인 예방 교육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 같은 방식의 교육으론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서 교수는 "현장에서 청소년을 만나보면 전교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도박 교육이 이뤄진다고 한다"며 "심지어 강의하는 와중에도 도박하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이어 "청소년 불법 도박이 변하는 양상에 맞춰 더 효율적이고 깊이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부모들이 자녀 동의하에 계좌 내역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도 도박을 막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