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도중 갑자기 '삐' 소리 30분간 지속…추가시간은 고작 2분
"소음 때문에 시험 망쳐"…치대 진학 꿈 좌절된 의경
교육당국 "소음·시험 성적 인과관계 규명 어려워…보상 힘들다"
법조계 "관리자 과실 인정돼…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할 듯"
지난달 14일 충남 천안고에서 2020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본 김동현(22)씨는 그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다. 2교시 수학 영역 시험이 한창이던 오전 11시. 고사실 천장에서 갑자기 ‘삐, 삐’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절전을 위해 학교 측에서 천장에 달아놓은 ‘재실감지센서’에서 나는 소리였다. 수험생 28명은 갑작스러운 소음에 귀를 막거나 긴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감독관들이 대책 마련에 분주한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 소음은 약 30분간 이어졌다. 당시 2교시 시험 시간은 100분으로, 시험시간의 3분의 1 가까이를 방해 받은 것이다. 하지만 시험 종료 후, 감독관이 수험생들에게 추가로 제공한 시간은 단 2분. 센서 제거를 위해 잠시 시험이 중단됐던 2분만 추가 시간으로 주어졌다. 센서 주변에 있던 김씨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에서 "소음 때문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집중력을 잃으면서 마킹 실수까지 했다고 한다.
서울 사립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김씨는 올해 오랜 꿈이었던 치과대학에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지원했다. 내신 성적이 높아서 수능에서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면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의경 복무 중인 김씨는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 공부에 ‘올인’했다고 한다. 그는 수능 직전 치러진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선 대부분 과목에서 1~2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소음 피해를 본 이번 수능에선 가채점 결과, 평소 1~2 등급을 받아온 수학 영역이 3등급까지 떨어졌다.
수능을 망친 김씨는 다음 날인 15일 관할 교육청인 충남도교육청에 "구제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치과 대학에 가고 싶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세 번째 수능에 도전했는데,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꿈이 물거품 됐다"며 "하루 3시간씩 자며 공부한 게 억울하고 분하다. 핑계가 아니라, 소음이 머리 위에서 계속 울리니 집중하기 어려웠고, 참담함 그 자체였다"고 했다.
지난달 27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센서 경보음으로 인해서 수능 수학시험을 망쳤습니다’란 제목의 청원글을 올렸다. 1일 오전까지 1400명이 넘는 시민이 그의 청원에 동의했다.
교육청은 당시 문제의 센서가 수명이 다해 오작동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구제나 보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수능일 직전까지 수차례 고사장을 점검했지만 해당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 했다"며 "과거 유사한 사례들을 참고해 구제 여부 및 방법을 논의 중이지만, 소음의 경우 시험 결과와의 인과 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워 보상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만약 김씨가 교육청으로부터 구제를 받지 못할 경우, 직접 교육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14학년도 수능에서 세계지리 8번 문항 출제오류로 피해를 본 수험생들 100여 명이 소송을 내 추가합격 조치나 성적 재정산을 받은 적은 있지만, 소음 등 외부 요인 때문에 소송까지 간 사례는 거의 없었다.
법조계에서는 일단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법무법인 율원의 강진석 변호사는 "수능 시험 도중 오랜 시간 알람이 울리는 등 관리자 측의 과실이 일부 인정되고, 이로 인해 피해 학생이 시험 성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손해배상 청구가 충분히 가능하고, 법원에서 위자료를 인정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법률사무소 제이더블유의 강유리 변호사는 "교육당국이 고사장 사고 방지를 위한 주요 임무를 다하지 않았고, 당시 시험에 영향을 줄 정도의 소음이었다는 부분이 입증된다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교육당국이 고의로 손해를 입힌 것이 아니므로 위자료를 얼마나 높게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강 변호사는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교육 당국이 나서서 이번 소음과 시험 사이의 인과관계를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같은 교실에서 소음 피해를 본 다른 수험생 2명과 함께 교육청에 다시 피해 구제를 요구할 계획이다. 그는 "혼자서 항의하니까 (교육당국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같은 고사장에서 피해를 입은 다른 수험생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함께 연대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교육 당국의 공식적인 사과와,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도 함께 요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