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자제·우울증 호소 글에도 "네가 자초" "관종이네"
구하라 생전 마지막 글까지 악플 시달려
위헌 판결 받은 '인터넷 실명제' 재도입 필요성 제기
댓글 금지·악플 처벌 강화도 악플 방지 대책으로 부상

"악플 달기 전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볼 수 없을까." <6월 17일, 구하라의 악플 자제 호소글>
"진짜 피곤한 스타일…네가 자초한 것."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 <10월 14일, 구하라의 설리 추모 라이브 방송>
"SNS로 관종(관심종자)짓? 사람이 할 도리인가…역겹네 진짜."

"잘 자." <11월 23일, 생전 마지막 글>
"누워서 돈을 번다." "관종이네."

지난 24일 걸그룹 카라의 멤버 구하라(28)씨가 세상을 떠났다. 절친한 사이였던 가수 설리(25·최진리)가 지난달 14일 악플(악성 댓글)로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42일 만이다. 두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으로 악플이 지목받으면서, 인터넷에서는 "이번엔 정말 악플을 근절해야 한다"며 인터넷 실명제 도입 등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구하라.

◇ "亡者 팔아 인스타 홍보하냐"…악플 자제 호소했지만 끝까지 돌아온 악플

구씨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큼, 수많은 악플도 감내해야 했다. 스타의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받았지만, 24시간 지켜보는 대중의 시선 등 무대 밖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2017년에는 ‘롤링 타바코’로 보이는 사진을 실수로 올렸다가, 골초에서 대마초 마약설까지 여러 가지 악의적 추측과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구씨는 지난해 9월에도 당시 남자친구였던 최모(28)씨와 폭행 시비로 법적 다툼을 벌여오던 중 악성 댓글로 고통을 호소했고, 지난 5월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후 의식이 없이 발견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구씨는 지난 6월엔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울증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우울증도 쉽지 않다. 당신도 우울증일 수도 있다는 걸, 아픈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라는 글을 남겼다. 우울증과 악플러들에게 받은 상처를 고백한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찌그러져 조용히 살아라" "답 없네…가족이 없나"라는 악플이었다.

구씨는 이어 "앞으로 악플 조치 들어가겠습니다. 악플 선처 없습니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제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여러분들께서도 예쁜 말 고운 시선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라고 했다.

구씨는 평소 소셜미디어 등에서 악플에 대한 피해를 호소해왔다. 지난 4월에는 쌍꺼풀 수술 의혹이 불거지자, 안검하수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어린 나이 때부터 활동하는 동안 지나온 수많은 악플과 심적인 고통으로 많은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안검하수를 하는 덴 다 이유가 있겠죠"라는 글을 올렸다.

또 "단 한 번도 ‘악플에 대해 대처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면서 "저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모습이든 한 번이라도 곱게 예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악플 자제를 당부했다.

하지만 악플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0월 구하라가 설리에게 남긴 추모글에도 악플이 이어졌다. 구하라는 설리가 운명을 달리 했을 때 인스타그램에 설리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올리고 라이브 방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구씨의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런 순간에도 인스타그램은 왜 하는거야?"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 "망자 팔아서 인스타그램 홍보하네" "생전에도 하고 싶은 대로 살다 악플도 생긴 거 같은데" 등의 악플이 쏟아졌다.

구씨는 숨지기 바로 전날에도 악플에 시달렸다. 구씨는 지난 23일 소셜미디어에 침대에 옆으로 누워있는 사진과 함께 "잘 자"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팬들과 마지막 소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글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캡처 화면이 퍼지면서 "누워서 돈을 번다" "악플이 나오지 않게 일상 사진을 올리지 말고 조용히 살라" "왜 이런 걸 올려. 관종이네" "이 사진을 보고 기분 나빠졌다" 등의 악플이 달렸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꼭 행위를 시도하기 전에, 일종의 징후나 시그널(신호)를 보인다"며 "구씨가 악플과 관련해 고통을 호소하고, 악플러들에게 멈춰달라고 호소했던 것이 일종의 시그널이었을 것 같다. ‘잘 자’라고 적은 마지막 글도 암시하는 글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구하라와 관련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

◇ 위헌 결정난 ‘인터넷 실명제’…일각서 재도입 필요성 제기

일각에서는 ‘설리법’에 이어 ‘구하라법’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비보(悲報)가 전해질 때마다 악플에 대한 자성과 문제 제기가 논의되지만 더는 자정작용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실명제’ 등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넷 실명제는 지난 2007년 도입됐다가 5년 뒤인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당시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했다. 이후 증가하는 악플과 명예훼손 등 인터넷의 부작용을 막을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지적과 함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매번 유야무야됐다.

한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는 "회사 차원에서 ‘악플을 보지 말라’는 교육도 하고, 악플 피해를 본 연예인에게 심리 상담도 주선하지만 큰 효과는 없다"며 "악플의 상처는 사람을 칼로 찌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장에서 느끼는 해결책은 실명제 밖에 답이 없다. 실명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택광 경희대 문화평론과 교수도 "포털사이트에서 댓글을 없애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당장 폐지할 수 없다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한적으로 댓글이 사라지게 하는 등 대안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악플에 대한 처벌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악플'은 스트레스를 배출할 최적의 도구이지만, 익명성과 처벌의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은 악플을 다는 것에 별다른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며 "사이버 명예훼손의 경우 최대 7년으로 양형 기준을 가지고 있어 약하지 않다. 형사정책적으로 강한 처벌로 ‘악플을 쓰면 무조건 걸리고,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쁜 악플과 관련된 사례를 언론에서 보도하면서, 악플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설리의 사망을 계기로 악성댓글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포털사이트 다음은 지난달 31일 연예 섹션 뉴스 부분의 댓글 서비스를 폐지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이 배경에 대해 "최근 안타까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예 섹션 뉴스 댓글에서 발생하는 인격 모독 수준은 공론장의 건강성을 해치는데 이르렀다는 의견이 많다"라며 "애초 취지와는 달리,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네이버는 아직까지 댓글 정책 개편과 관련해 논의 중인 사안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