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1개 여단 정도를 감축하는 방안은 이미 주한 미군 수뇌부와도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이 분담금 대폭 인상을 관철하기 위해 금기어(禁忌語)인 주한 미군의 감축·철수까지 운운하며 한국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초유의 사태"라고 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 미군 사령관은 지난 14일 내·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 미군의 군수 또는 새로운 시설 건설을 지원하고자 한국 정부가 한국인에게 지급하는 돈"이라며 인상안 수용을 강하게 설득했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감축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알고 한 발언"으로 보는 기류가 강하다.

앞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도 지난 11일 방한에 앞서 일본으로 오는 길에 "보통의 미국인은 주한·주일 미군을 보며 '한국, 일본은 아주 부자 나라인데 왜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한다"고 했다. 주한 미군의 필요성에 대해 입버릇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해온 미군 수뇌부의 기존 태도를 감안하면 이례적 발언이다.

최근 미군의 해외 파병이나 철수는 외교·군사적 고려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저버린다'는 비난 속에서도 "유세 때 병사들을 집에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며 시리아 철군을 결정했다. 그러나 같은 달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레이더와 미사일 방어체계, 2개 전투기 대대 등을 보내 총 3000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 병사들의 비용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100% 내고 있다. 그 협상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졌는데 아마 35초쯤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에 대해 '나쁜 거래'란 인식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 시절인 2016년 5월엔 "동맹국들이 우리를 제대로 대하지 않으면 세계의 경찰 역할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그들(한국 등)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동맹국들이 응하지 않으면 협상장에서 나올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19일 제임스 드하트 미국 측 협상 대표가 제11차 SMA 3차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현실이 됐다. '인상안을 거절하면 주한 미군을 줄이면 되니 협상을 깨라'는 지침이 하달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이 회의적으로 평가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론'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미·북 정상의 '브로맨스'와 맞물리며 '무시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로 급부상했다. 김정은이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자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언젠가는 주한 미군을 빼고 싶다"며 주요 연합훈련을 유예·중지했다.

이처럼 주한 미군 감축·철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생각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50억달러를 제시한 것이 '방위비 협상용'이라기보다 '주한 미군 철수용'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에 대해 "일부러 거부당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주한) 미군 철수 구실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미 국방수권법이 주한 미군 감축을 막아줄 안전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현재 2만8500명인 주한 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감축할 경우 예산 사용이 제한된다. 하지만 이는 최대 6500명까지 줄일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다만 현재 미 의회에서 심의 중인 2020회계연도 법안은 주한 미군의 하한선을 2만8500명으로 상향했다. 그러나 외교 소식통은 "미국 국익에 부합하고 미 국방장관이 동맹과 적절히 상의한 경우에는 (감축 제한의) 예외가 인정된다는 규정도 있어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법안 서명을 거부하고 철군 계획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 thorization Act)

미국 의회가 매년 당면한 안보·국방 정책을 명시하고 관련 예산 및 지출을 포괄적으로 명시하는 국방예산법안. 주한 미군의 최소 규모를 2만2000명으로 규정한 감축 제한 조항이 들어 있다. 현재 한국에는 2만8500여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