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달린 탐험가 김현국씨
최근 대륙 변화상 자료 구축
"청년세대에 희망 주고 싶어"
러시아 극동에서 유럽의 서쪽 끝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을 무대로 24년째 탐험을 계속해온 탐험가 김현국(51·'당신의 탐험' 대표)씨가 최근 네번째 모터바이크 대륙 횡단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지난 5월 말 아시안하이웨이 6번 도로(AH6) 기점인 부산을 출발,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바이칼호수~크라스노야르스크~노보시비르스크~옴스크~우랄산맥~카잔~모스크바~베를린을 거쳐 암스테르담까지 갔다가 다시 모스크바를 거쳐 돌아오는 대장정. 4개월 여 동안 모터바이크로만 2만㎞를 달렸다.
그의 탐험은 단순히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여행과는 다르다. 이번 탐험의 핵심 목표는 지난 2010년 완성된 1만 4000㎞에 이르는 대륙횡단 도로를 중심으로 대륙에서 최근 일어나는 변화들을 감지하고 이에 대한 세밀한 자료를 구축하는 일. 그는 "우리 청년과 미래 세대를 위해, 미개척 시장이자 자원의 보고로 떠오른 유라시아 대륙의 기회와 위험 요소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번 탐험에서 그의 눈에 비친 대륙의 모습은 쉴 새 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횡단도로를 따라 자동차 통행량이 많아지면서 끝이 없는 길을 따라 주유소가 만들어졌고, 숙소와 정비소, 휴게소와 트럭 운전자들을 위한 샤워장 등 복합 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다국적 자본에 의해 가격 경쟁력을 가진 제품들이 시베리아 오지의 구멍가게를 채우고 있었다. 중앙 아시아의 달콤한 과일들이 툰드라 지역에까지 보급돼 북극권 사람들에게 비타민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는 "카자흐스탄 침칸트에서 생산된 수박이 3000km거리의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 어떻게 이동하게 되는지, 자동차를 이용한 물류 이동이 기존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비해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등을 자료에 담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 횡단도로가 완성되기 전에는 모든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화물 열차가 중기계와 원자재 등의 이동 수단으로 특화된 반면, 신선도 유지가 필요한 채소·과일과 부가가치가 높은 물건들은 대형 화물차에 실려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그는 또 이번 탐험에서, 대륙 횡단도로 거점 12곳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이곳에서 대륙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지선(支線)들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1000km 단위로 만들어진 12개의 베이스캠프는 유라시아 대륙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그는 "각각의 베이스캠프로부터 현지인 현장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루트를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유라시아 대륙과의 인연은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을 졸업하던 날 그는 모터바이크를 비행기에 싣고 시베리아로 떠났다. 도로도 갖춰지지 않은 시베리아를 건너 모스크바까지 1만 2000㎞를 8개월 만에 횡단했다. 낯선 땅 사람들과 숲 속의 맹수 등 수많은 위협과 길 없는 황무지를 가로지르며 사고로 인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무모한 모험이었지만,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통일 이후의 한국, 한반도로부터 확장된 공간으로서 유라시아 대륙에 대해 누군가 자료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편배달 마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했던 안톤 체홉의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큰 영감을 줬다"며 "우리와 국경을 마주한 거대한 대륙에서 기회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후, 세계탐험문화연구소 등을 운영하며 북유럽과 중앙아시아, 중국, 인도, 일본 등에 체류하며 탐험을 계속해온 그는 18년 만인 2014년 두번째 대륙 횡단에 나섰다. 2010년 완성된 러시아 횡단도로를 따라 모터바이크로 부산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2만 6000㎞(시베리아횡단 열차 9288㎞, 배 1800㎞) 대장정이었다.
그는 이어 2017년 세번째 대륙횡단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출발 직후, 당초와는 달리 바이칼호까지로 바뀐다. 강원 동해항에서 아홉 명의 바이크 여행자들을 만난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고 한다. 그는 "2주 가량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인들이 자신의 차량으로 바이칼호수까지 다녀올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도록 구체적 자료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유라시아 육로 여행자를 위한 세밀한 정보와 자료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모터바이크로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사람이 매년 수백명을 넘는다. 유라시아 횡단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온라인 모임에는 수만명이 드나든다.
김씨는 "11개의 시차와 180개 이상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러시아에는 아직 많은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며 "누구나 자신의 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정보와 교육, 도움을 제공하는 거점 시설(베이스캠프· 가칭 '유라시아 콤플렉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대륙 횡단 탐험 중에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탐험가 클럽'(The Explorers Club)으로부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정회원 자격을 인정받았다. 탐험가 클럽은 1904년 저명한 탐험가와 교수, 기자, IOC 위원 등이 설립한 세계 최대의 탐험단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과 남극점을 처음 밟은 아무젠, 북극 탐험가 피어리, 에베레스트에 오른 힐러리와 대서양을 비행기로 날았던 찰스 린드버그 등이 정회원으로 활동했다.
김씨는 "1996년 사상 첫 모터사이클 대륙 횡단을 시작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반복적인 자료 구축 과정에서 확인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 정신을 인정받은 것 같다"고 했다.
요즘 취업난 등으로 힘겨워하는 청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는 그는 "우리 청년들이 섬처럼 고립된 한반도 남쪽의 울타리를 벗어나 드넓은 대륙에서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유라시아 탐험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