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이세돌(36) 9단의 현역기사 은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 9단의 친형으로 매니저 역할을 맡아온 이상훈(44) 9단은 18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세돌 9단이) 더 이상 기사 직을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해 은퇴를 서두르기로 했다. 이르면 이번 주중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세돌은 지난 3월 기사 사직 의사를 한 차례 밝힌 바 있다. 중국 커제 9단과 겨룬 '3·1운동 100주년 기념 대국'서 완패한 직후 회견에서 "올해 말~내년 초 사이에 프로기사 직을 내려놓을 생각"이라고 했었다. 은퇴 시점이 당시 계획보다 한 달 이상 앞당겨진 데는 한국기원과의 오랜 불화가 한몫했다.

이세돌이 이르면 이번 주에 프로기사직을 떠난다. 전성기에 비해 내리막길에 접어든 아쉬움에 한국기원과의 불화가 겹쳐 당초 예정보다 사직을 서둘게 됐다.

이 9단은 프로기사회가 권한을 남용하고 적립금을 부당하게 뗀다며 2016년 5월 기사회 탈퇴를 단행했었다. 한국기원은 이 문제를 3년 넘게 미루다 새 집행부가 들어선 직후인 지난 7월 이사회를 소집, "본원 주최 기전엔 기사회 소속 기사만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새 정관을 통과시켰다. 이미 은퇴를 공언한 이세돌의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이상훈 9단은 "세돌이는 당초 성적 하락에 따른 개인적 아쉬움으로 은퇴를 생각했던 건데 대국이 아예 불가능해져 그 시기를 앞당기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세돌의 공식전 기록은 7월 30일 박영훈과의 바둑왕전 대결 이후 4개월째 공란 상태다.

양측은 이세돌 은퇴 후에도 적립금을 둘러싼 법적 공방을 계속할 전망이다. 적립금은 이세돌이 기사회를 탈퇴한 뒤 한국기원이 기사회의 요청에 따라 이세돌에게 지급하지 않고 보관해온 상금 공제액을 뜻한다. 약 3200만원 규모로 알려졌다.

1995년 입단한 이세돌은 사반세기 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스타 기사였다. 그의 은퇴는 한국 바둑이 배출한 최고 '풍운아'의 퇴장을 의미한다. 변화무쌍한 착점 못지않게 언행도 항상 화제를 부르곤 했다. 특유의 직설적 화법과 외골수 행동으로 그에 대한 찬사와 비판은 항상 평행선을 달렸다.

초년병이던 2000년 이미 32연승을 내달렸던 그는 3단 시절엔 대선배들을 제치고 최우수기사로 선정, 승단대회 폐지를 이끌었다. 2009년엔 바둑리그 불참 등의 사유로 동료 기사들이 자신의 징계를 결의하자 6개월간 휴직을 단행하기도 했다. 2014년엔 라이벌 구리와의 10번기가 지구촌을 달궜고, 6승 2패로 승리한 그는 상금 500만위안(약 8억5000만원)의 주인이 됐다.

2016년 3월엔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결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개막 전 예상과 달리 1대4로 패했지만, 그 1승은 인류가 AI에 거둔 사실상의 마지막 승리로 남았다.

40살도 안 된 나이의 '은퇴'는 지켜보는 팬들 입장에서도 곤혹스럽다. 바둑은 80~90대까지도 현역 프로로 활동하는 '전 연령대 게임'이기도 하다. 길지 않은 기간 무려 50회 우승, 국제대회만 18번을 정복한 극강의 자존심이 최근의 하락 곡선을 견뎌내지 못했다(현재 한국랭킹은 14위). 여기에 소속 집단과의 불협화음이 그의 '퇴장'을 부채질했다.

은퇴 이후 계획에 대해선 알려진 게 없다. 이상훈 9단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는 다니는데 바둑 쪽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세돌이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현재 서울 소재 국제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어서 일가족의 외국 진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