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일베냐?" 하는 말에서 토론은 불가능하다. "당신은 좌좀이오?"라고 되물을 수 있으나 이 또한 토론은 아니다. '일베'는 우파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좌좀'은 좌파 좀비를 줄인 말이다. 적대와 비난의 언어는 지위와 권한이 동등한 친구 사이라도 대화를 중단하게 한다. 하물며 교사가 학생에게 "너, 일베냐?" 했다면 이는 토론도 아니고 교육도 될 수 없다. 이런 일이 음습한 인터넷 공간도 아니고, 21세기 대낮에 서울 어느 고교에서 벌어졌다. 이 학교는 '토론으로 학생 중심 수업을 하는 혁신고'라고 홈페이지에 적고 있다. 비슷한 사례가 다른 학교에서도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해당 교사(들)는 억울한 모양이다. 학교 게시판에 짧은 글을 적어 붙였다. '교사가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에 따라 교육을 위해 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물론이다. 누구도 교사에게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을 버리라고 강제할 수 없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도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에 따라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나(교사)의 양심과 가치관에 따른다고 상대(학생)의 양심과 가치관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나의 가치관만 옳다고 여긴 까닭에 "너, 일베냐?" 하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교육자의 자세도 아닐뿐더러 민주 시민의 태도도 아니다. 나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제할 수 있다는 태도는 파시즘일 뿐이다.
해당 교사는 전교조 창립 멤버라고 한다. 1989년 '참교육'을 내걸고 출범한 전교조는 창립선언문에 이렇게 썼다. '우리 교직원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린한 독재 정권의 폭압적인 강요로 인하여 집권 세력의 선전대로 전락하여 국민의 올바른 교육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진실된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잘못을 저질러왔다.' 30년 전 초심(初心)에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을 다시 비춰보았으면 한다. 민주화 이후 한 세대 지난 지금 정치적 중립성을 유린하고, 집권 세력의 선전대로 전락하여, 진실된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이 참다못해 정치 편향 교육을 중단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교실에서 정치 토론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에 따라 정치적 의견을 자유롭고 주저 없이 발표할 수 있도록 토론의 장(場)을 마련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교사는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베냐?" "좌좀이냐?" 식으로 몰아붙이는 행태를 제어해야 할 의무가 있다. 건전한 토론이란 흑(黑)과 백(白) 사이에 무수히 다른 색깔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흑의 양심과 가치관으로 백의 양심과 가치관을 비난하는 곳에서 자유로운 토론은 싹틀 수 없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고 썼다. 여러 의견 사이 다양한 섬이 있으며,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어느 섬이든 갈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세상에선 돌팔매질만 난무한다. 1980년대 시인 박덕규는 '섬'을 비틀어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사이').
1970년대 김민기 노래 '길'을 요즘 더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여러 갈래 길/ 누가 말하나/ 이 길뿐이라고…'. 흑백논리를 강제하지 말라고, 하나의 길만 있다 강요하지 말라고 절규한 40여년 전 노래가 지금 더 마음을 울리게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