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하지 말라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대개 거꾸로 '남불내로'하며 철이 듭니다. 어려서 손가락질하던 일을 자신이 직접 겪고 보니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자식은 능력 없던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제자는 엄했던 스승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위를 보면 친정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며느리를 맞이하면, 시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은 알게 되지요. 얄미운 일구이언과 아름다운 성숙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가 봅니다.  홍여사

일러스트= 안병현

오늘 같은 날은 우리도 한잔하자며, 딸이 술상을 차립니다. 작심하고 준비한 듯 소주도 맥주도 아닌 샴페인 병을 꺼내옵니다.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샴페인을 따보겠느냐며 말이죠.

하긴 그럴 만도 합니다. 우리 모녀에게 오늘은 꿈같은 하루였습니다. 막내 녀석 상견례에, 엄마와 누나로 참석하고 왔으니까요. 비어 있는 아버지 자리는 사위가 채웠습니다. 풍채 좋고 언변 좋고, 나이까지 좀 많은 사위 보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저는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는데, 딸은 또 그게 좀 불만인가 봅니다.

"엄만 왜 그렇게 기죽은 사람처럼 입 다물고 있었어?"

"솔직히, 우리가 좀 꿀리잖아. 홀어머니에 외아들 아니니? 딸 가진 입장에선 반갑지 않지."

"에이, 그건 사람 나름이지. 우리 시어머님 어떠셨어? 외아들의 홀어머니시지만, 누구보다 쿨하셨잖아."

"그야 그렇지만…."

딸이 내미는 술을 받아 잔을 마주치고, 한 모금 목으로 넘기며 맞은편 장식장 위에 놓인 사부인의 사진을 봅니다. 맞아, 저 모습이셨지. 입가의 섬세한 주름에서 은은한 향이 묻어날 것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자그마한 여인. 15년 전, 딸의 상견례에서 처음 뵈었던 사부인 모습이 딱 저랬습니다. 말씀도 워낙 온화하고 점잖으셔서, 상견례를 마치고는 제 마음이 아주 가벼웠었지요. 그때는 건강하던 제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답니다. 사부인 뵙고 보니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요. 그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강산이 두 번도 못 바뀌어, 저만 홀로 남고 다들 떠나갔습니다. 남편도 세상을 떴고, 사부인도 가셨지요. 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어느덧 처음 뵙던 그날의 사부인 나이가 되었고, 또 이렇게 며느리를 본다고 상견례를 다녀왔네요. 똑같은 홀시어머니 이름표를 달고서…. 그러고 보니, 액자 속 마냥 푸근해 보이던 사부인 얼굴에서 서글픔이 느껴지는 건 오늘의 제 기분 탓일까요?

이제는 비밀을 털어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인자하고 우아한 사부인의 민낯을 딱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답니다. 딸아이가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일을 하고 있어서 제가 걱정이 많을 때였습니다. 반찬도 만들어다 주고, 수시로 청소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딸아이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딸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시어머님에게도 친정 엄마에게도 알려 드리지 않기로 신랑과 합의를 봤다네요. 가까운 거리에 사시는 시어머님이 불시에 들이닥치실까 봐 불안한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제가 보기엔 그럴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냥 양쪽 어머니 모두에게 알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죠. 그러나 딸은 말을 안 듣더군요. 신랑과 그렇게 약속을 했다고요. 하는 수 없이 딸아이 집 앞에 꾸러미만 내려놓고 발길을 돌리곤 했답니다.

그날도, 현관 앞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선 채로 딸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밑반찬 무엇무엇 해다 놓았으니 이렇게 저렇게 차려 먹으라고요. 그런데 그 문자를 막 전송하려는데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관문이 왈칵 열리더니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사부인이었습니다. 세상 어느 장소에서 마주쳤더라도 우린 그렇게 놀라고 당황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 머릿속에 퍼뜩 든 어리석은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니 비밀번호를 어떻게 아시고 거길 들어가셨나? 사부인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부인의 놀란 표정은 당혹감으로, 또한 서글픔으로 바뀌더군요. 늘 단아하시던 양반이, 인사도 제대로 못 챙기고 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타버리시는 겁니다. 반쯤 열린 현관문 손잡이를 제게 넘기며, 사부인 들어가 보시라고 한마디 남기고는요.

참으로 의아한 일이었습니다. 나한테는 비밀이라던 번호를, 시어머니한테는 알려 드린 걸까? 하지만 대놓고 묻지도 못했지요. 만일 사위가 번호를 누설한 거라면 그걸로 부부가 또 다투지 않겠어요? 차라리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고 입을 닫아버렸지요.

세월이 지나니 수수께끼는 절로 풀리더군요. 그 당시 월요일과 수요일은 우리 딸의 퇴근이 늦어, 사위가 집안일 당번을 맡고 있었다지요. 언젠가 딸이 그러더군요. 신랑이 당번 맡은 날은 집안일을 완벽하게 하면서, 같이 있을 때는 영 바보처럼 군다고요. 그때 눈치 챘습니다. 아하, 어머니가 그날 아들 대신 파출부 노릇을 한 거구나. 그렇게나 아들이 아까워 장가는 어떻게 보내셨나 싶었지만, 다른 일로는 며느리 힘들게 하는 분이 아니었기에, 저는 입 꾹 닫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 수수께끼만 풀리는 게 아니라 입장도 뒤바뀌네요. 친정 엄마이던 저는 이제 곧 시어머니가 됩니다. 이제야 그 옛날 사부인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된다면, 너무 속 보이는 소린가요?

'시어머니 짓'이 꼭 대접받고 싶은 욕심만은 아니라는 걸 요즘 느낍니다. 예전 시어머니는 당당하게 심술부리고 호령했는지 몰라도 요즘 그렇게 간 큰 여인은 적을 겁니다. 쿨한 시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시대정신 앞에서 꽤나 고되고 외롭답니다. 제 아들만 해도, 남자의 속성 그대로 사랑하는 그녀의 머슴을 자처하며 엄마에겐 요구하는 것만 많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놓기만 하라는 아들. 지금은 한참 그럴 때라 이해는 하지만, 참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순간도 많답니다. 아마 사부인도 같은 심정을 겪으셨겠지요? 며느리 몰래 신혼집을 드나든 건 꼭 아들 대신 청소당번을 하려고 그랬던 건 아닐 겁니다.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이던 아들을 낯선 여자의 품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소심한 염탐의 심리도 있었겠지요. 그만큼 사부인은 외로우셨던 겁니다. 아들을 놓아주기 위해서는, 젖을 떼는 몇날 며칠의 방황이 필요하셨던 겁니다. 저도 이제 그런 방황의 시간을 맞이하겠지요. 부디 감쪽같이 우아하게 잘 보내야 할 텐데…. 어느 날 누군가에게 서글픈 민낯을 들킬까 봐 겁이 나네요.

술기운 때문일까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사부인의 사진을 집어듭니다. 손수건으로 먼지를 닦아 드리며 말합니다. 듬직한 아들을 제게 남겨주고 가셔서 오늘 무척 힘이 됐다고요.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아들과 며느리 손녀 사이 한가운데 자리에 놔 드립니다. 자, 이제 더는 외롭지 마시라고….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