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A피부과는 피부를 당겨 올려 주름을 개선하는 리프팅 등 미용 성형이 전문인 피부과 의원이다. 다른 진료과목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곳 원장은 산부인과 전문의다. 본인이 훈련받은 전공과목과 다른 진료과목으로 개업한 것이다.

점차 분만이 주는 데다 분만 수술로 인한 의료사고 소송 위험이 늘어난다는 이유 등으로 산부인과 전문의가 피부과, 내과 등 다른 진료과목에 종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6일 보건복지부가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A피부과 원장같이 다른 진료과목에 전념하거나 겸업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수(의원급 기준)가 지난해 1078명으로 집계됐다. 2014년 936명에서 5년 사이 15%쯤 늘었다.

서울에서 산부인과와 피부과를 겸업하는 한 여성 의원 원장은 "서울아산병원 등 큰 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로) 제대로 훈련받고도 정작 개원할 때는 다른 과를 선택하는 후배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턴·레지던트 등 의사 초년생 사이에서 산부인과 인기도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 40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의 산부인과 지원율은 정원에 못 미쳤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 수가는 낮은데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분만 수술의 경우 위험도가 높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의사 책임이 크다"고 주장한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일본이나 대만의 경우 뇌성마비, 분만 중 산모 사망에 대해서는 국가가 배상을 책임지고 있다"며 "고의과실이 아닌 의료 행위에 대해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의사를 구속하는 것에 의사들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대구지방법원 2심 재판부가 사산아 분만 수술 도중 임신부가 사망한 사건에서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해당 산부인과 의사를 법정 구속하자, 의사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항의 시위를 열기도 했다.

김순례 의원은 "최소한의 출산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부인과의 수가보상 체계를 바꾸고 법·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등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