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요가 수행자들은 때로 여러 날 동안 호흡과 심장 박동을 멈춘 상태에서 땅속에 묻혔다가 거뜬히 소생하곤 한다.’
‘신(神)을 기(氣)속에 집중하면 기는 저절로 신을 감싸듯 받아들여 신과 기가 서로 뭉쳐진다. 생각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를 ‘도태’라고 부른다. 도태가 성숙해져 두정을 통해 나가는 경지가 오는 바, 친히 부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니라.’
‘제주 명상수련원 50대 사망사건’이 발생한 H명상수련원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 사건은 △수련원 원장 등이 숨진 50대 남성의 시신을 한 달 반 동안 방치하며 "죽은 게 아니라 명상 중"이라고 주장했고 △시신 주변에서 흑설탕과 주사기, 한방침 등이 발견됐으며 △수련원 회원이 시신을 주기적으로 닦아왔다는 점 등이 의문으로 꼽혔다. 경찰 수사 결과 사인(死因)은 심장질환, 시신을 방치한 이유는 원장의 그릇된 신념이 원인으로 좁혀지고 있다.
◇시신 한 달 반 방치…옆에서 흑설탕·주사기·한방침도 발견
제주서부경찰서는 수련 도중 의식을 잃은 A(57)씨에게 적절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유기치사·사체은닉·사체은닉방조 등)로 제주시 한 명상수련원 원장 B(58)씨를 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수련원 회원 등 5명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이고,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9월 1일 이 수련원에서 수련 도중 의식을 잃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 외력에 의한 타살이 의심되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약독물 사용 가능성은 남아 있어, 경찰은 국과수에 약독물 검사 등 추가 감정 의뢰한 상태다.
A씨는 지난 8월 30일 "제주도로 수련하러 간다"며 전남 자택을 나섰다. A씨는 이전에도 H수련원에 종종 찾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와 연락이 끊겼던 것은 9월 1일부터. 의아하게 여긴 A씨 부인은 수련원에 면회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고, 한 달 반만인 지난달 15일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이 수련원 3층 수련실에서 반듯하게 누운 상태로, 부패가 상당 진행된 A씨를 발견했다. 시신 옆에는 흑설탕과 주사기, 한방침, 에탄올 등이 놓여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피의자들의 진술은 황당했다. 피의자들은 "A씨는 죽은 것이 아니라 깊은 명상에 빠져 있다", "A씨 몸을 주기적으로 닦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동한 경찰관을 향해서도 "지금 들어가면 A씨가 다친다"고 막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수련 도중 기맥이 멈추면 깨달음을 얻는다?…"잘못된 믿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과 피의자 진술 탓에 경찰은 사이비 종교나 주술 행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나섰다. 수사 결과 경찰은 이 수련원에서 종교나 주술적인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주사기와 한방침, 에탄올 등은 부패한 시신을 관리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흑설탕도 A씨가 숨진 것이 아니라고 보고 A씨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설탕물을 묻힌 거즈를 A씨 입술 위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H수련원 카페에 들어가 보면, ‘호흡과 심장 박동을 멈춘 상태에서 땅속에 묻혔다가 거뜬히 소생한다’는 등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내용이 즐비하다. 카페 글 중에서는 1700년대 작성된 불교식 한 수련방법인 ‘혜명경’을 설명하는 대목도 있다. 혜명경에서는 기주맥주(氣住脈住)라며, 수련 도중 기가 멈추고 맥이 멈추는 시간을 겪은 뒤 깨달음을 얻는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다.
원장 B씨는 경찰 조사에서 꾸준히 "그는 명상 중"이라고 주장했고, 수련원 회원 일부는 ‘A씨가 사망했다’는 정도의 인식을 했고,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A씨를 처음 발견한 회원은 "A씨가 깊은 명상에 빠졌다"는 원장의 말을 믿고 A씨를 눕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있는데,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