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식 국제부장

홍콩 캐세이퍼시픽 항공사는 최근 회장,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을 싹 물갈이했다. 조종사와 직원도 여럿 해고당했다. 중국의 압박 때문이다. 이 항공사 직원들이 홍콩 시위에 참여한 것이 알려지자 중국 당국은 비상식적으로 압박했다. 시위에 참가한 승무원은 중국행은 물론이고 중국 영공 통과 비행도 금지한다고 했다. 영공 통과 항공편 승무원의 신상 정보도 요구했다. 승무원 정치 성향을 검열해 영공 통과를 허가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프로농구협회(NBA) 휴스턴 로키츠의 대릴 모레이 단장은 지난달 트위터에 '자유를 위한 싸움, 홍콩과 함께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이 몰고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중국농구협회(CBA)는 휴스턴과의 모든 교류를 중단했고, 중국 스폰서 기업들은 휴스턴에 제공하던 협찬을 딱 끊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선 로키츠 관련 상품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CBA는 모레이 단장을 NBA 이사직에서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NBA와 소속 구단을 중국의 기준 아래 굴복시키려 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영국의 패션 브랜드 올세인츠는 지난달 28일 중화권 3대 영화제인 대만 금마장에 협찬하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호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중국 지도에서 대만을 뺐다는 이유로 불매 운동 대상이 된 글로벌 기업은 부지기수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달 24일 중국 관련 정책 연설에서 중국이 공격성을 노골화하면서, 세계의 불안정성을 가중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패권 대결 상대국에 대한 단순한 적대감 표시가 아니다. 인권과 표현의 자유까지 억누르는 중국의 검열 기준을 외국에까지 폭력적으로 요구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것이 보편화된 세계 질서를 상상해보라. 끔찍하다.

문재인 정권은 한국을 이런 중국적 질서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방어용인 사드를 배치했다가 중국의 경제 보복이 시작되자 '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한·미·일 3국 군사동맹 구축'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不) 합의'를 해주었다. 안보 주권을 포기한 내용이다. 심지어 그에 대한 대가는 '교류·협력 정상화'도 아니고,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현대 외교사에서 이 정도로 굴욕적인 외교 협상이 있었나. 그 결과는 참담하다. 중국 당국의 교묘한 한국 관광 제한은 여전하고, 한국 드라마와 공연, 게임은 여전히 중국 국경을 1㎝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없다. 2년 이상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다.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굴욕이 꼭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절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난달 21일 베이징 샹산포럼에는 아시아 각국 국방장관과 군 장성들이 참석했다. 응오 쑤언 릭 베트남 국방장관은 포럼 기조연설에서 "베트남의 동해(남중국해)는 많은 안보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며 "베트남은 유엔 해양법 협약을 포함한 국제법에 따라 (이 지역에서) 항공 안전, 항행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가 국제법을 운운한 건 2016년 국제 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국제 규범을 무기로 중국의 심장부에서 중국에 일갈한 것이다.

국익과 안보는 비겁과 구걸로 지켜지지 않는다. 양보할 게 따로 있다. 베트남 국방장관 정도의 강단과 기개를 내보이진 못하더라도 주권 사안을 갖다 바치며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