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 동남구에 있는 2층 주택.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동심의 세계가 펼쳐진다.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69)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의 작업실. 공룡과 고래, 병아리 등 색종이 작품 100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찼다.
지난달 21일 만난 김 원장은 "지난 30년간 색종이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며 웃었다. "틈날 때마다 여기서 종이접기를 해요. 요즘에는 해외 교육기관에서도 강의 요청이 쏟아집니다. 동남아시아는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예요. 한 번 수업을 열면 현지 수강생이 200~300명씩 몰려올 만큼 'K-종이접기' 열풍이 거세요."
◇유치원에 전화 돌리며 종이접기 매력 전파
김 원장은 1988년부터 'TV유치원 하나둘셋'(KBS)과 '혼자서도 잘해요'(KBS) '김영만의 미술나라'(대교어린이TV)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린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쳤다. 2015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인기를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현재는 마산대학교 아동미술교육과 교수로,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1982년 서른두 살이 되던 해 인생에 큰 위기가 있었어요.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해 모아둔 돈을 다 날렸는데 그 무렵 종이접기를 알게 됐어요. 일본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종이접기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게 무척 신기했어요. 그걸 보면서 몇 장 접어봤는데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한국에 있는 종이접기 책은 일본 책을 우리말로 단순 번역한 수준인 데다 난도도 높아 아이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했다. 종이접기를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찾기 어려웠다.
"종이 접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 화려한 색깔, 종이 만질 때의 느낌…. 한국 어린이들도 종이접기를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종이 한 장으로 큰 교육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양 손가락 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니 아이들의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되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며 창의력도 키울 수 있죠."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김 원장은 남다른 감각과 손재주를 살려 종이접기에 몰두했다. 3개월간 일본으로 '종이접기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일본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종이접기 시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전문 학원에 갔더니 성인들뿐이었어요. 우동집 사장, 할머니들 틈에 한국인 한 명이 껴서 종이접기를 배운 거예요. 말도 안 통하니 선생님 손만 보면서 따라 했죠."
귀국 후 본격적으로 한국식 종이접기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정리한 내용을 혼자만 갖고 있기에는 아까웠다. 직접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교사들을 모아 수업을 진행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1980년대 미술 활동은 그리기가 전부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종이 몇 번만 접어도 바람개비가 완성되는 종이접기가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재미난 종이접기를 알려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초등학교 미술교사로도 일했고 방송 출연 기회도 얻었어요."
◇"한국 넘어 해외로 K-종이접기 열풍 이어갈 것"
이후 30여 년간 국내 종이접기 시장은 몰라보게 진화했다. 한국식 종이접기 기술이 체계화됐고 활용 분야도 넓어졌다. 색종이를 접으며 삼각형, 사각형, 사다리꼴 같은 수학의 기본 도형을 배우고 알파벳 모양을 접으며 영어를 익히기도 한다. 김 원장도 2만개에 달하는 종이접기 기술을 개발했다.
"종이접기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를 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작사가나 작곡가가 저작권료를 받듯이 내가 개발한 종이접기 기술을 다른 사람이 쓸 때마다 돈을 받을 수 있게 하라고요. 물론 그렇게 하면 돈이야 벌겠죠. 그런데 저는 교육자예요. 제가 개발한 아이디어들을 교육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활용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그런 건 생각도 안 해요."
최근에는 해외 교육기관에서도 그를 찾는다. 한인학교 초청으로 시작된 강의가 소문이 나면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미국, 독일, 러시아 등에서도 수업을 했다. 김 원장은 "교육 환경이 열악한 저개발국가 아이들의 경우 색종이와 풀을 처음 보는 경우도 있다"면서 "좀 더 가르쳐주면 좋을 텐데 일정 관계상 더 머물지 못해 늘 아쉽다"고 말했다.
"수업 마지막 날에는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적은 뒤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데, 종이를 펴보면 대부분 고맙다는 내용이에요. 어떤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선물은 주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직접 연필꽂이나 액자를 만들어와 건네요. 눈물 나죠. 종이접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보람과 긍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자비를 들여서라도 종이접기 봉사를 가는 이유예요."
김 원장은 수십 년간 종이접기 교육을 하며 깨달은 교훈이 하나 있다고 했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는 아이들에게서 그걸 배웠다고 했다. "강연이 끝나면 아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물로 주는데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집에 가져와 어떻게 접었나 펼쳐 봅니다. '와, 내가 모르는 방식이네' 하고 놀란 적이 많아요. 앞으로도 더 겸손한 자세로 종이접기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어요. 평생교육원 원장으로서 국내 중장년층에게 종이접기를 알리고, 해외에서 K-종이접기 열풍이 이어지도록 힘쓰는 것. 그게 제 목표이자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