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붉게 물든 대구 팔공산 등산로 초입의 한 식당 건물. 폐업한 식당이라 이곳을 찾는 손님은 없지만, 건물 안에선 분주한 인기척이 들리고 고소한 빵 냄새가 풍겨나온다.

식당 한쪽에서 제빵사 옷을 갖춰 입고 빵을 굽는 이는 최계호(68) 전 경북과학대 총장이다. 시폰 케이크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그의 손놀림은 어딘가 서툴러 보였다. 레시피에서 1g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며 사발에 담은 밀가루와 설탕을 넣었다 뺐다 하며 수십 번 저울에 무게를 다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마추어였다. 그러나 정확한 계량을 거쳐 완성된 빵의 맛은 빵집에서 판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빵 반죽은 물이 조금만 많이 들어가도 묽어져서 맛이 없어져요. 사람이 먹는 빵을 만드는데 정확하게 해야죠."

은퇴 후 제빵사로 변신한 최계호 전 경북과학대 총장은 “봉사 활동을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최 전 총장은 이곳에서 주 1~2회 빵을 만들어서 대구 지역 무료 급식소 등에 제공한다. 한 달에 들어가는 재료비가 20만원 정도다. 2년 전 제빵기능사 과정을 수료했고, 지난달엔 자신이 소유한 식당 건물에 제빵 시설을 갖췄다. 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최근 위험물안전관리자격증과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50여년을 교육자의 삶을 살며 전문대 총장과 공공기관 이사장까지 지내고 은퇴한 최 전 총장은 "나이 들어서도 일을 놓지 않으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사는 것이 노후 계획"이라고 했다. 목사이기도 한 그는 "종교인으로서 이웃들의 손을 잡아주고 기도를 해주는 것도 좋지만,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도움을 주고 싶어 빵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그의 봉사 생활은 20대 때부터 시작됐다. 영남대 수학과 재학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을 야학으로 가르쳤다. 육군 제2군 부사령관을 지낸 권태오 예비역 중장도 그의 야학 제자라고 한다. "학업과 봉사를 병행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낮에 구두닦이로 돈을 벌고 와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공부를 하려는 아이들의 열정을 외면할 수 없었지요." 그는 "그 열정을 생각해서라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호랑이 선생님'을 자처하며 엄하게 가르쳤다"고 했다.

최 전 총장은 "봉사도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성으로 하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오히려 민폐를 끼친다는 이유다. 그래서 그는 교육 과정은 수료했지만 아직 따지 못한 제빵기능사 자격증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최근엔 직업학교에서 제과 과정을 배우는 동시에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교육원도 다니고 있다. 제빵 시설이 있는 4층짜리 식당 건물은 주거 공간으로 새롭게 꾸미려고 한다.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탈북민들에게 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저에겐 봉사는 저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