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그간 터키가 주장해온 시리아 북부 '안전지대'를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안에 전격 합의했다. 합의에 따라 터키는 쿠르드 민병대와의 휴전을 150시간 연장하며, 그사이 러시아군이 터키군을 대신해 '안전지대'에서 쿠르드 민병대를 철수시킬 계획이다. 쿠르드 민병대가 완전히 철수하면 터키가 자의적으로 안전지대라며 설정한 동서 444㎞, 남북 30㎞의 시리아 땅을 터키와 러시아가 공동으로 순찰·관리한다는 게 이번 합의의 골자다.

결과적으로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쿠르드 민병대가 힘겹게 확보한 시리아 북부 지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철군을 선언한 지 단 보름 만에 러시아와 시리아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됐다. CNN은 "시리아 철군의 지정학적 최대 패배자는 미국이라는 게 드러났다"며 "트럼프가 푸틴에게 선물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도 "소치에서의 합의로 중동의 외톨이였던 푸틴이 중동의 최대 중재자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쿠르드족의 유랑 - 터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시리아 북동부 마을 다르바시야에서 22일(현지 시각) 쿠르드인 가족이 트럭의 짐칸에 타고 피란을 가고 있다. 다르바시야는 주민 대부분이 떠나 사실상 유령 마을이 됐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전했다. 이날 터키와 러시아는 시리아 북부 지역을 양국이 공동으로 순찰하고 관리하는 방안에 전격 합의했다.

러시아는 향후 '안전지대 공동 관리'라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이 떠난 시리아 북부에 군을 장기 주둔시키며 대(對)중동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가 터키와의 합의로 중동의 핵심 동맹인 시리아가 더 많은 영토를 수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고 지적했다. 이번 합의로 시리아가 내전으로 상실했던 북부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때 IS의 수도였다가 쿠르드 민병대가 탈환한 시리아 북부 거점 도시 락까는 이미 시리아 정부군이 쿠르드 민병대를 대신해 통제권을 장악했으며, 락까의 군 비행장에는 러시아 공군 헬기가 대거 배치된 상태다.

쿠르드 민병대로서는 러시아·시리아의 안전보장하에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터키와 러시아, 시리아에 한꺼번에 대항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터키는 이번 합의로 시리아 북부로 영토 확장을 이루진 못했지만 관리권을 확보했다. 또 그간 터키의 안전지대 설정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리아가 사실상 안전지대를 수용함으로써, 시리아 북부에 쿠르드족 독립국 수립을 저지한다는 주요 목표도 달성했다. 러시아·시리아 군이 쿠르드 민병대 철수를 맡게 돼 군사 작전으로 인한 추가적인 인명 피해와 이로 인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날 미 상원에서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주도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에 반대하는 결의안이 발의됐다. 결의안에는 트럼프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다른 공화당 중진 의원들이 참여했다. 매코널 대표는 "시리아에서의 철군은 테러리즘을 불러올 것"이라며 "철군을 철회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중동에서 더 많은 지렛대를 얻게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