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관객모독'은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77)에게 새 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다. 기존 연극의 형식을 부정한 '반(反) 연극'의 상징작으로, 한트케가 문단의 이단아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배우가 관객을 '모독'하는 상황이 이미 가정됐음에도, 모독에 노출된 관객의 돌발적 반응이 연극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런 관객과, 관객을 관찰하는 배우가 만들어내는 긴장이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국내에서는 1978년 극단 76의 기국서 상임 연출이 국내 초연했다. 물세례와 욕설을 퍼부은 연극에 당시 대학로는 떠들썩해졌다. 기 연출은 도발적이면서 문제의식이 강한 연출가로 단숨에 자리매김했다.
엄혹한 유신, 군사정권 시대를 살아가는 답답한 관객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안기며 인기를 누렸다. 덕분에 2014년까지 서울 대학로에서 꾸준히 공연했다. 기 연출은 그 해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개월가량 공연했을 당시 초창기 공연을 떠올린 적이 있다. "처음 공연할 때는 관객들을 모독하고, 흥분시키니 반발을 했다. 당시 객석 바닥에서 떨어지는 의자를 사용했는데, 의자들을 무대에 던지고 그랬다. 조명기도 깨졌다"고 기억했다.
또 작품 속에서 배우들은 대사를 제멋대로 띄어 읽거나 반복하는 등 기존 언어의 문법과 틀도 깨부순다. 그런데 형식과 언어가 해체된 것에 대해 현재의 관객들은 예전 관객들보다 불편을 느끼는 감성지수가 낮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까. .
그게 아니라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언어, 감각적인 것이 많이 해체돼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만났던 기 연출도 "해체에 익숙해졌는지 요새 관객들은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짚었다.
오히려 모독을 넘어 잔혹한 혐오가 넘치는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의 역치가 한없이 높아진 만큼, '관객모독'의 문제의식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가 궁금해진다.
'관객모독'은 이제 혐오에 만연해진 관객을 모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뒤쳐져 있거나 공감하거나 그 사이에 위치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한트케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다시 관객을 만나 흐름을 탐지하는 것도 좋을 법하다.
한편 극단 76단과 기 연출은 여전히 대학로에서 공연을 올리고 있다. 기 연출은 '관객모독' 외에 '미친 리어' '햄릿' 시리즈 등 문제작들을 잇따라 발표한 대표적인 연극 실험가다. 최근 2년 만의 신작으로 부조리극의 대가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게임'을 올렸다. 배우 하성광 등이 출연했는데 중간마다 대사가 끊어지며 관객을 환기시키는, 해체성이 역시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