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석 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위원
'시간의 역사, 고려시대 달력을 복원하다' 출간

사전적으로 시간(時間)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를 말한다. 시간을 나누어서, 단위로 계산한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영어의 타임, 라틴어 템푸스는 자르다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켐노, 잘라냄이라는 뜻의 토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 서양 모두 시간을 ‘잘라서’ 헤아리고, 측정한다.

자르는 데는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설정하고 시간을 자르는 자가 권력을 가졌다. 역사의 지배자가 누구인가를 판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나라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서금석 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이 ‘시간의 역사, 고려시대 달력을 복원하다’를 출간헀다. 우리나라 ‘시간의 역사’를 고려시대로 좁혀 탐색한 전문서이다.

한국사 연구자가 이 시간을 파고 들었다. 한국중세사를 전공해온 서금석 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이 고려시대의 시간을 복원했다. 당시에 통용된 달력을 살려냈다.

그는 "사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달력의 복원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며 "그렇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연구로 전남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그리고 출간했다. ‘시간의 역사, 고려시대 달력을 복원하다’(도서출판 혜안)이다.

차근 차근 자료를 수집하면서 준비했다고 한다. 복원된 달력은 고려 문종36년(1082년)의 임술년역일(壬戌年曆日)이다. 이 달력의 명칭은 고려의 달력으로 ‘고려사’에 최초로 등장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서 연구위원은 말했다.

달력의 복원은 시간이 어떻게 나귀고, 누가 그것을 행사했는지를 파악하게 해준다. 당시의 국제적인 역학관계와 질서까지 알게 해준다. 그리고 당시 고려인들의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부수효과도 가져다준다.

저자는 대학원에서 고려사 ‘역지(曆志)’를 공부하면서 본격적인 탐색의 계기를 갖기 시작했다. 최근 발견된 심원사 소장 13세기 ‘길흉축월횡간 고려목판’이 고려력(曆)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농작업 일정, 길흉일도 보여주고 있었다.

저자는 단편적으로 전해온 자료들을 모으고 ‘새벽녘 훤하게 날이 밝아올 때까지’ 수많은 날들을 거치며, 발견의 기쁨과 사명감으로 달력을 추적했다.

중국,우리나라의 자료들을 섭렵했다. 그 결과, 고려시대 달력을 복원할 수 있었다.

당시 고려는 거란, 송, 금 그리고 원과 명의 교체기에도 이들 나라로부터 력(曆)을 받았다. 당시 동아시아 보편적 시간질서에 고려가 편입돼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고려는 국내 질서에 활용할 독자적인 달력을 제작하고 운영했다. 당시 정월에 대한 선택권은 중원 제국에 있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음력 1월을 정월로 정했고, 그것은 대체로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이 되었다.

고려가 중국의 력을 토대로 만든 자체 (달)력은 중국의 역과 비교가 가능했다. 택일과 같은 길흉의 내용을 덧붙여 놓은 생활력의 모습을 갖추었다. 또한 고려의 달력은 월령(月令)류를 흡수하여 상용력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1년을 12개월로 나눠 각 달마다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항을 소개한 것이 월령이다. 24절기와 월초일을 뜻하는 기삭(氣朔)은 물론 망, 현, 일월식과 72절후, 그리고 각종 절일, 월령류와 음양서의 택일류 등을 포함하여 고려의 실상에 맞게 쓰여졌다. 이사 등 일상생활상 적기를 선택하는 것이 택일이다.

이처럼 국가에 의해 부여된 시간의 질서에 따랐을 고려인들의 생활상이 그려진다. 전통적으로 그래왔듯 고려도 효율적인 통치의 기제로 활용했다.

저자는 "역일에서 길흉의 내역은 속신의 기능으로만 치부되기에 앞서, 일상적인 일들을 정형화시켜 동시설을 발현시킴으로써 농경사회에서 노동생산성을 집약시키는 데 익숙하게 했을 것"이라며 "동시에 이를 효율화시켜 생산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국가가 구체적인 생활질서까지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통제장치가 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이 책은 전문서이다. 달력을 복원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전거를 갖춰 그려내고 있다. 앞으로 시간을 주제로 한 통시적인 서적이면서도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복원된 고려시대의 달력중 정월(음력). 농사일정과 길흉까지 포괄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국가에 의해 시간이 통제되었다. 달력에 규정된 내용에 따라 영향을 받았을 일상생활사도 추정해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