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무죄 '여비서 추행' 70대 파기환송..."기억 흐리고, 모호한 태도 이해해야"
"2년 간 매일같이 추행당했다", 피해사실 16차례로 추렸지만 최초 2회만 인정

자신의 여비서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 유죄 판단이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70대가 다시 재판받게 됐다. 대법원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시 따져보라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내서다. 직장 내 성폭력 등의 경우 곧장 피해사실을 드러내기 힘든 만큼 피해자 진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소 불분명해지고 모호해지는 점도 충분히 감안하라는 것이다.

대법원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A(74)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는 사람의 기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추궁을 당하게 되면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의심을 품어 모호한 진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표현상의 차이로 사소한 부분에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거나 단정적 진술이 다소 불명확한 진술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A씨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피해자에게 ‘이쁘다’고 말하며 허리를 껴안는 등 2014년 9월부터 2016년 3월까지 16차례에 걸쳐 자신의 여비서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고용 관계로 인해 보호·감독하는 지위를 악용했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는 2016년 3월 말 A씨로부터 신체접촉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들은 당일 퇴사한 뒤 A씨를 고소했다.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따라 결과가 갈렸다. 1심은 범죄사실 가운데 2014년 9월 2차례 추행을 유죄로 인정하고 A씨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은 "A씨는 신체접촉을 한 적이 없고 피해자와 같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나,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 등을 보면 추행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2심은 범죄사실 전부를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A씨와 피해자 사이 대화내용에 비춰보면 여러 차례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피해 장소·일시나 강제성이 있었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A씨가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신체접촉을 한 사실은 원심도 인정하고 있고, 2014년 9월 2차례 추행에 대한 진술은 주요한 부분에서 전체적으로 일관될 뿐만 아니라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피해자가 최초 피해를 당한 지 약 2년 뒤에야 고소했고, 2심 재판은 다시 고소일로부터 3년이 지난 점 등이 고려됐다.

다만 최초 피해 2건을 제외하고 1·2심 모두 무죄로 본 나머지 14차례 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대법원도 무죄로 판단했다. 피해자는 A씨를 고소한 뒤 경찰 조사 때 "2년 동안 매일같이 출퇴근 시간 때 추행당했다"고 진술했다가, 피해일시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만 추려 고소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직을 하려면 2년 경력을 쌓아야 해서 괴로웠지만 참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