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혹시 제가 말씀드린 자료 올려주셨나요?"
"네 올렸어요. '슬랙' 보시면 있을 거예요."
"봤는데 없어서요. 다시 한 번만 확인해주시겠어요?"
"안 올라와 있나요? 확인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잠시만요."
#2. "내가 말한 자료 올렸어?"
"응, 올렸어. '슬랙' 봐봐."
"없어서 그래. 한번 봐줘."
"안 올렸나? 잠깐만."
두 대화를 보라. 첫째 대화는 존댓말. 서로 모르는 사이이거나 평등 호칭을 사용하는 기업 직원일 것이다. 둘째는 반말. 동등한 관계인 입사 동기 또는 '호형호제'하기로 한 선후배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둘째 대화 글자 수가 전자의 절반이다.
최근 일부 스타트업 기업은 모든 직원에게 반말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효율적 의사 소통 방법이라는 이유다. 직원의 생각을 표현하기 더 쉽고, 미사여구에 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예상 못 한 결과 값에 대해 의견을 자주 교환해야 하는 IT 기업,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신생 기업 등에서 주로 시도하고 있다.
직책을 없애고 매니저 또는 '○○님' 등으로 부르는 기업은 많았지만, 모든 임직원이 반말로 소통하는 곳은 드물다. 한 기업은 94년생과 94학번이 서로 반말을 주고받는다. 업계에 따르면 반말 문화를 시도했거나 정착시킨 스타트업 기업은 20여 곳이다.
생각을 날 것 그대로 전달
취미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는 '클래스101'의 임직원은 모두 반말을 쓴다. 친구 사이였던 8명이 창업했던 2017년부터 임직원이 90여 명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창업자 중 한 명인 94년생 고지연 대표는 94학번 천세희 부대표에게도 반말을 쓴다. 천 부대표는 지난 20년간 네이버,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등에서 근무했다. 고 대표에게 스타트업 기업에 대해 조언해주다 같이 일하게 됐다. 열아홉 살 많은데 직급은 바로 아래. 다른 기업에서는 서로 존대하는 등 묘한 관계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별다를 게 없다.
부를 때는 별명으로, 어미는 '~했어?'를 사용한다. '벨라(천세희 부대표의 별명), 오늘 회의는 언제 할 거야?' 같은 식이다. '야' '너'는 금지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호칭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 직원은 "막말 아닌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라며 "상호 간 존중은 기본"이라고 했다.
창립 멤버 주어진(29) 콘텐츠 프로듀서는 "각자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가장 날것의 생각을 던질 수 있는 반말을 쓰기로 했다"며 "존댓말은 생각을 한 번 더 다듬어야 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했다. 회사 회의실 문에는 '커뮤니케이션은 아름답지 않다'는 글자가 붙어 있다. 상대를 배려하겠다는 이유로 돌려서 말하면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주 프로듀서는 "슬랙이나 카카오톡같이 글자로 의사 소통할 때도 존댓말은 더 많은 글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야' '너' 금지 외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반말로 마찰이 생긴 적은 없다. 주어진 프로듀서는 "우리 직원들은 상처를 주거나 트러블을 바라며 한 말이 아니라는 암묵적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채용 시에도 "우리 회사는 서로 반말을 사용하는데 괜찮겠냐"는 질문을 반드시 한다.
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머신러닝 데이터 플랫폼을 개발하는 임직원 15명의 IT 기업 '슈퍼브에이아이(SuperbAI)'도 반말을 사용한다.
별명도 부르지 않는다. 김혜진(29)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지난해 9월 입사하자마자 김현수(29) 대표에게 '현수야'라고 불렀다. 면접 때까지 존댓말을 사용하던 사이였다. 표현도 직설적이다. 김 매니저가 "카피 글 썼는데 어때?"라고 김 대표에게 물으면 "구리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김 매니저는 "처음에는 가감 없는 표현에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나도 대표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리다'고 한다"고 했다.
상사가 부하 직원을 질책하는, 소위 '깨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김 매니저는 "예상 밖 결과가 나오면 납득할 때까지 서로 묻는다. 개인 실수로 보이는 것도 파고들다 보면 시스템 결함일 때가 있다. '잘하자' '죄송합니다'와 같은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김현수 대표는 "한국 특유의 서열 문화 속에서는 솔직하게 의견을 내고, 격렬하게 토론을 하는 업무 방식을 정착시키기 어렵다"며 "예의 차리지 않고 정확하고 빠른 의견 개진을 위해 존댓말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라프텔' '디넥스트' '마인딩' 등 스타트업 기업이 직원 간 반말을 사용하고 있거나 시범 운영했다. 백기복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직원들 사이 '예의 차리기'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자기 검열을 하느라 겪는 심적 부담, 시간 낭비 등이 조직 경영 비용으로 작용한다. 20~30대 위주로 구성된 기업이 이 비용을 인지하고 줄이려 하는 시도로 보인다"고 했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사라질 수도
2015년 반말로 소통하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은 1년 전부터 존댓말을 사용한다. 기업 규모가 커지며 반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줄더니, 이내 사라졌다고 한다. 경력직, 신입 등 직원이 많아지면서 기존 사내 문화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권수현 텀블벅 간사는 "다른 회사에서 온 직원도 있고, 팀도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폐지하게 됐다"고 했다. 초기 임직원은 4명, 지금은 약 20명이 근무하고 있다.
반말을 쓰는 기업 관계자들은 같이 일할 직원이 갖춰야 하는 조건이 있다고 했다. 그중 공통으로 언급한 세 가지를 꼽자면 이렇다. 반말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하며, 반말과 막말의 경계를 알아야 하고, 힐난 의도가 없음을 서로 믿어야 한다.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반말 기업들은 인재 채용에 온 힘을 쏟는다. 그러나 텀블벅같이 인력이 많이 필요한 경우 또는 직원들의 반발 등으로 반말을 사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2년간 반말을 사용했던 한 스타트업은 3개월 전부터 존댓말을 사용 중이다. 한 직원이 대표에게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있는데, 반말을 사용하며 친한 척하니까 오히려 더 악감정이 생기는 것 같다"며 "그 직원과는 존대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직원이 10명 남짓했던 이 기업에서 두 명만이 서로 존댓말로 대화하는 모습은 사내 분위기에 치명적이었다. 결국 모두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했고, 존댓말에 다시 적응할 때까지 2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전문가들은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기업 규모가 커지며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서울시립대 윤창현 경영학과 교수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 실리콘밸리식 소통법을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은 평소에도 윗사람 이름을 부르며 편하게 대화해서 적용이 쉬웠겠지만, 우리나라는 늘 윗사람에게 깍듯하게 대한다. 사내 충분한 합의가 없으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친구 같은 리더를 원하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분석도 있다. 백기복 국민대 교수는 "과거의 카리스마 리더십보다 지금은 함께 가는 '프렌드 리더십'이 대세"라며 "20~30대가 주를 이루는 기업에서 반말 문화를 도입하는 것도 충분히 소통하는 '프렌드 리더십'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