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10월 1일) 다음 날인 2일 저녁 8시 30분. 베이징 장타이 지하철역 근처 CGV싱싱 영화관의 스크린 가득 붉은 깃발이 펼쳐지고 그 위에 ‘나와 나의 조국’이란 금빛 글자가 떠올랐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9월 30일 개봉한 영화 ‘나와 나의 조국(我和我的祖國·My People, My Country)’이다.

1949년 10월 1일 오후 3시, 중국 공산당을 이끈 마오쩌둥(毛澤東)은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이미 오늘 성립됐다"고 선포한다. 그 직후 한 남자가 마오쩌둥의 뒤로 다가가 "주석, 버튼을 누르고 돌리십시오"라고 작게 말한다. 곧이어 톈안먼광장의 높이 22.5m 깃대 위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솟아올랐다. 신중국 건국을 세상에 알린 순간이다.

2일 중국 베이징 CGV싱싱 영화관이 있는 한 쇼핑몰에서 영화 ‘나와 나의 조국’ 광고가 나오고 있다.

영화는 건국식 ‘전야(前夜)’인 9월 30일 톈안먼광장 깃대 설계자인 임치원(林治远)이 전동 국기 게양 장치를 만드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임무는 오성홍기가 전 세계에 소개되는 날, 중국 최초로 전동 장치를 이용해 국기를 자동으로 깃대 꼭대기까지 올리는 것이다. ‘한몸을 바치겠다’는 그의 맹세에 걸맞은 분투가 이어진다. 1949년 베이징의 거리 풍경,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의 옛 초상화, 인민복 차림의 사람들 등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는 장면들이 계속된다.

마오쩌둥의 손끝에서 버튼이 눌리고 저멀리 톈안먼광장 깃대에서 붉은 오성홍기가 나부끼는 순간, 실존 인물인 임치원의 실제 모습과 함께 ‘이 이야기는 실제 역사 속 사건이다’란 문구가 화면에 나타났다. 200여 석을 가득 메운 상영관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다. 중국 관영 매체 신화사는 영화평에서 "임치원의 실제 얼굴이 화면에 겹쳐질 때 누구도 감격의 뜨거운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영화 ‘나와 나의 조국’ 포스터.

영화는 감독 7명이 신중국 건국 후 70년간의 역사적 순간 7가지를 그려냈다. 영화 ‘패왕별희’로 잘 알려진 천카이거 감독이 총감독을 맡았다.

‘전야(감독 관후)’에 이어1964년 중국의 핵폭탄 개발 성공을 다룬 ‘상우(감독 장이바이)’·1984년 로스엔젤레스 하계올림픽 당시 중국 여자 배구팀이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딴 이야기를 소년과 소녀의 이별과 재회를 통해 그린 ‘탈관(감독 쉬정)’·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식을 그린 ‘회귀(감독 쉐샤오루)’·택시 운전사가 겪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야기 ‘베이징니하오(감독 닝하오)’·2016년 유인우주선 선저우 11호와 우주비행사 두 명의 귀환을 다룬 ‘백주유성(감독 천카이거)’·여성 공군 조종사를 통해 본 2015년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 이야기 ‘호항(감독 원무예)’이 155분간 쉼없이 펼쳐진다.

영화 ‘나와 나의 조국’에서 1949년 10월 1일 톈안먼광장에 중국 오성홍기가 첫 게양되는 장면.

‘나와 나의 조국’ 속 7개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역사 속 순간을 불러냈다. 그러나 영화 전체에 일관되게 스며 있는 메시지는 같다. ‘국가를 사랑하고 자긍심을 가지자.’ 현실에서 멀게 느껴지는 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애국심을 더 깊이 불어넣었다. 사실 7편 모두 진짜 주인공은 오성홍기다. 각 편의 중요한 순간마다 오성홍기가 화면을 붉게 물들인다.

영화 흥행 통계를 제공하는 중국 박스오피스 마오옌(猫眼) 집계에 따르면, ‘나와 나의 조국’은 개봉 나흘째인 3일 낮 1시(현지 시각) 기준 누적 수입 12억 위안(약 2000억 원)을 기록했다. 개봉일인 9월 30일 수입 2억8400만 위안을 시작으로 흥행 질주하고 있다. 국경절 연휴가 10월 7일까지 이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연휴 내내 지금보다 더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민복 차림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베이징 톈안먼에서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국경절 행사 중 손을 흔들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 ‘중경삼림’으로 유명한 가수 왕페이가 부른 ‘나와 나의 조국’ 노래가 흘러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따라 흥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나의 조국’은 원래 중국의 대표적인 애국 노래다. 1일 톈안먼광장에서 펼쳐진 건국 70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참석자들이 ‘나와 나의 조국’을 다함께 부르기도 했다.

‘나와 나의 조국’과 같은 날 개봉한 또 다른 애국 영화 ‘중국기장(中国机长·The Captain)’은 같은 시각 9억2600만 위안(약 1561억 원)의 수입을 모았다. 흥행 순위 2위다. ‘중국기장’은 2018년 5월 14일 쓰촨항공 3U8633편 항공기의 조종석 유리창이 수만 m 상공 비행 중 깨진 상황에서도 조종사가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킨 사건을 재현했다.

영화 ‘중국기장’ 포스터.

영화 ‘등반가(攀登者·The Climbers)’는 9월 30일 개봉해 누적 4억9100만 위안(약 828억 원) 수입으로 흥행 3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1960년 중국 등반대가 세계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산 북쪽 등정에 성공한 도전기를 담았다.

같은 날 동시에 개봉한 중국 애국 영화 세 편엔 민족주의 정서가 짙어졌다. 마오쩌둥의 인민복을 입은 시 주석은 1일 건국 70주년 연설에서 ‘위대한 중국인민공화국 만세’ ‘위대한 중국공산당 만세’ ‘위대한 중국인민 만세’를 외쳤다. 영화에서도 ‘우리는 위대하다’는 시 주석의 이 메시지가 곳곳에서 읽힌다.

1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에서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국경절 행사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