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희 EBS PD·'생존의 조건' 저자

13세기 이후 이집트를 지배한 맘루크 왕조는 터키의 오스만제국과 함께 이슬람 세계를 양분하는 패권(覇權)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몽골제국을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막아내 이집트를 구원한 것도, 십자군을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히 몰아낸 것도 그들이었다.

이 왕조는 다른 왕조들과 달리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었는데, '엘리트 중무장 기병대'인 맘루크 군단이 집단으로 이집트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전임 술탄의 아들이 대를 잇는 것이 아니라 맘루크 군단의 총사령관이 술탄의 자리를 이어받아 이집트를 다스렸다. 혈통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총사령관에 오르는 것이 술탄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무능한 술탄이 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오랜 기간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갔다.

이토록 막강한 왕조였지만, 화약혁명의 시대가 오자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몰락했다. 오스만제국이 대포와 총으로 무장하는 사이 맘루크들은 여전히 중무장 기병대의 정면 돌격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최후의 순간에 총과 대포를 향해 돌격한 맘루크 기병대는 비록 용감했을지 몰라도 어리석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답은 그들이 '엘리트 중무장 기병대'라는 기능을 바탕으로 이집트를 다스리는 집단이었다는 데 있다. 그들의 직업이 곧 그들이 가진 권력의 원천이었다는 말이다.

이들에게 화약무기를 받아들인다는 건 자신의 존재 기반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화약무기'와 '지배자 자리'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더구나 모든 신기술은 처음엔 불완전한 상태로 등장한다. 초기의 화약무기도 마찬가지여서 전투 중에 불발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폭발해서 아군을 죽이기도 했다. 그런 상태에서 과연 지배자의 자리를 내놓고 신기술을 채택할 지배자들이 있을까? 이집트가 화약무기라는 혁신을 받아들이려면 맘루크라는 지배자를 몰아내야만 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이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남들에게 잡아먹히는 법"이다. 맘루크들은 스스로를 잡아먹지 못했기에 결국 오스만 제국에 잡아먹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