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한국 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9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높이뛰기 결선. 세 차례 시도 끝에 2m08을 넘지 못한 마리야 라시츠케네(26·러시아)에게 관중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는 후련한 표정으로 손뼉을 치며 화답했다.

라시츠케네는 이미 2m04를 첫 번째 시도에 넘어 금메달을 확정한 상황이었다. 여자 높이뛰기 최초로 세계선수권 3연패(連覇)를 달성했지만 다른 선수들처럼 자국 국기를 몸에 휘감은 채 기뻐하진 못했다. 유니폼에 국기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가 러시아가 아닌 중립국 신분으로 이번 세계선수권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육상은 조직적으로 금지 약물을 복용하고 도핑 테스트 결과를 은폐한 정황이 드러나 2015년 11월 IAAF(국제육상경기연맹)로부터 모든 국제대회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중립국 신분으로 2019 도하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러시아의 마리야 라시츠케네(26)가 여자 높이뛰기에서 1차 시기 2m04를 뛰어 3연패(連覇)를 달성한 뒤 손가락 세 개를 펴보이며 자축하는 모습(왼쪽 사진). 오른쪽은 라시츠케네와 같은 기록을 3차 시기 만에 성공해 2위에 올랐지만, 자신의 종전 기록을 9㎝ 경신한 기쁨에 놀란 표정을 짓는 야로슬라바 마후치크(18·우크라이나).

도핑 파동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라시츠케네도 이 때문에 2016 리우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출전 금지 처분이 내려지기 3개월 전 열린 2015 베이징 세계선수권에서 2007·2009 세계선수권 챔피언 블란카 블라시치(크로아티아)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건 그로선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는 "마음이 아파 TV로도 리우올림픽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2017년이 라시츠케네에겐 전환점이 됐다. 그해 3월 스포츠 저널리스트 블라다스 라시츠카스와 웨딩 마치를 울린 그는 5월 미국 유진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리그를 통해 600여일 만에 국제 무대 복귀전을 치렀다. 개인 자격으로 대회에 참가한 라시츠케네는 당시 개인 최고 기록인 2m03으로 우승하며 공백을 무색하게 했다. 이후에도 꾸준한 기량을 펼친 끝에 이번 세계선수권까지 정상을 지켜낸 라시츠케네는 이날 "세계선수권 3연속 우승은 동화 같은 일"이라며 "강력한 경쟁자인 마후치크 덕분에 오늘 내 모든 에너지를 필드 위에 쏟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년 도쿄올림픽에 라시츠케네가 나선다면 여자 높이뛰기는 '여제'에 '신성' 야로슬라바 마후치크(18·우크라이나)가 도전하는 형국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 선수들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도핑 테스트를 거쳐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로 출전했다.

마후치크는 이번 대회에서 라시츠케네와 같은 2m04를 기록했다. 하지만 라시츠케네가 1차 시기에 성공한 반면, 마후치크는 세 번째 시도 끝에 넘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m04는 마후치크의 종전 최고 기록(1m95)보다 9㎝나 높은 기록이다. 1m89와 1m96을 한 차례 실패 끝에 통과한 마후치크는 2m00을 3차 시기 만에 성공했다. 2m04 역시 세 번째 시도 만에 통과한 그는 아직 라시츠케네의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마치 금메달을 딴 것처럼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펄쩍펄쩍 뛰며 세리머니를 펼쳤다. 라시츠케네와 2m04로 동률이었지만, 바(bar) 높이를 더 올리지 않고 스스로 경기를 마감했다. 2m08에 도전한 라시츠케네에게 손뼉을 쳐주며 격려한 마후치크는 "은메달로 충분히 만족한다"며 "나는 열여덟 살이다. 언제든 금메달과 2m06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