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에 대한 에세이 시리즈를 만드는 건 어떨까?' 2017년 1월 중순, 자동차로 자유로를 달리던 이정규(42) 코난북스 대표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곧장 파주로 달려가 예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일했던 김태형(42) 제철소 대표와 이재현(45) 위고 대표를 불러 모았다. "어때? 셋이 같이 해볼까?" 당시 대형 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로 출판계는 우울했고,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기획에 목말라 있었던 두 사람은 즉시 승낙했다. 요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인 출판 시장에서 드물게 잘되는 책'이라는 평을 듣는 '아무튼 시리즈'는 '세 남자'의 작당으로 탄생했다.
2017년 9월 25일 첫 권으로 류은숙의 '아무튼, 피트니스'(코난북스)를 내며 출발한 '아무튼 시리즈'는 식물, 양말, 외국어, 발레, 술, 비건 등 너무나 좋아해서 삶의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한 가지'에 관한 책. 지금까지 모두 스물세 종이 나왔는데, 그중 스무 종이 중쇄를 찍었다. 시리즈 출간 2주년인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세 남자는 "그전에도 클래식, 와인 등 취향이나 기호에 대한 책이 있었지만, 중년 이상 남성들의 호사였다. 결이 다른 취미와 애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로 110㎜, 세로 178㎜ 크기, 200쪽 내외의 자그마한 문고본. 독자의 70% 이상이 20~30대 여성이다. 세 남자는 입을 모아 "매출의 절반가량을 '아무튼' 시리즈가 차지한다. '아무튼'의 인기 덕에 출판사 이름이 알려진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코난북스·제철소는 1인 출판사, 위고는 부부가 운영한다. "스스로에게 소소한 투자를 하는 데서 즐거움과 살아갈 힘을 얻는 독자의 마음을 끄는 책이다. 사소한 취향이 삶의 태도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재현)
가장 많이 팔린 건 1만부 나간 김혼비의 '술'(제철소), 다음은 김한민의 '비건'(위고)으로 7000부 팔렸다. 의외로 많이 팔린 책은 구달의 '양말'(제철소). "투고가 들어왔는데, '양말만으로 책이 한 권 될까, 누가 읽을까' 불안했지만 내가 양말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기로 결심했다."(김태형) 책은 지금까지 3쇄를 찍었고, 저자는 책 덕에 청담동 양말 매장 매니저로 취직도 했다.
'아무튼'이라는 시리즈 이름은 "혼란한 가운데서도 중심을 잡고 자기가 좋아하는 뭔가를 하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처음엔 각 권 가격이 9900원이고, 99권까지 내는 게 목표라 '구구문고'라고 할까도 했지만, 이정규 대표가 강하게 밀어붙인 끝에 '아무튼'이 됐다.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자신들의 '아무튼'을 공유하곤 한다. 그 '아무튼'이 다시 책의 아이디어가 된다."(이정규)
새로운 저자 발굴도 시리즈의 성과다. 저자 23명 중 12명이 첫 책을 냈다. "전문가보다는 직업이 따로 있으면서 그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찾다 보니 새로운 저자도 만나게 됐다"는 것. 여성 저자(13명)가 남성 저자(10명)보다 많고, 근간은 대부분 여성 저자 작품이다. 주 독자가 여성이다 보니 아무래도 '취향 저격'이 유리한 여성 저자 기획이 많아졌다.
세 남자의 개성이 다른 만큼, 출간하는 책의 빛깔도 제각각이다. 사회과학서적 출판사 코난이 '피트니스' 같은 활동을 많이 다룬다면, 문학 출판사 제철소는 '양말'처럼 아기자기한 것에 관심이 많고, 심리학 출판사 위고는 '비건' 유의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주제를 좋아한다. 앞으로 '수영'(코난북스), '언니'(제철소), '떡볶이'(위고) 등이 나올 예정. 세 남자가 '아무튼'을 쓴다면 어떨까 궁금했다. "닥스훈트요."(이정규) "제가 쓰고 싶진 않아요."(이재현) "매년 가족과 함께 가는 섬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김태형) 역시나 각인각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