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0.4% 하락해 8월(-0.04%)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물가 통계를 낸 이후 5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는 아니라지만 경기 침체 속의 지속적 물가 하락을 뜻하는 디플레이션(D)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가 하강하는데 정부의 잘못된 정책 처방까지 겹치고 있다. 정책 오류로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불황을 자초한 일본의 실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지금 한국 경제는 생산·투자가 부진하고 수출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제조업 생산능력이 13개월 연속 하락세이고 서민 경제는 얼어붙고 있다. 일자리 예산을 수십조원 썼지만 지난 2년 새 초단기 근로자만 52만명 늘려놓고, 주 36시간 이상의 풀타임 일자리는 118만개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기업 친화적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시장 활력과 산업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자해성(自害性)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비롯한 고비용 정책, 세계에서 가장 과격한 주 52시간 근무제, 전 세계 추세와 거꾸로 가는 법인세 증세 정책 등을 고집하며 역주행했다. 싸고 질 좋은 전기를 제공하던 원전을 적폐로 몰아 국가경쟁력의 원천을 무너뜨리고 있다. 말만 혁신 성장이고 실제론 혁신을 막는 규제를 더 보태고 있다. 폭력 노조만 활개쳐 민노총은 100만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선심성 복지에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바람에 예산 지출을 3년 만에 100조원 이상 늘려놓았다. 이 역시 민간 부문 활력을 잠식하게 된다.
그래도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경제가 이미 장기 침체의 초입에 진입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주요국 중 한국이 유독 심각한 침체를 겪는 근본적 이유는 잘못된 정책 처방 때문이다. 무능한 것도 모자라 '잘났다'는 독선에까지 빠져 있다. 이러다 디플레이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면 '자해형(型) 불황'을 만든 정부가 빠져나올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