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어린이 애니는 비주얼이 중요
한국, 3D 애니메이션에 강해
인도 애니' 아기 장사 빔' 주목
UCLA 경영학과, 훌리안 로키 금융 애널리스트, 비치바디 애널리스트, 넷플릭스 콘텐츠 전략&분석 매니저
2012년부터 버스를 이용했던 경기도민이라면 한번쯤은 운전석 쪽에 붙어있는 TV 모니터에서 재생되는 애벌레들의 코믹한 슬랩스틱 개그에 시선을 빼앗긴 적이 있을 것이다. 빨간색과 노란색 애벌레들이 대사 한마디 없이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내릴 정류장에 다다르기도 했다. 버스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이 캐릭터들을 마주치면 반갑기까지 했다. 어느새 빨갛고 노란 애벌레들에게 친숙해져버렸던 것이다. 이 애벌레들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표 주자인 '라바'의 주인공들이다. '라바'는 2011년 3월 KBS1에 처음으로 방영된 이후 경기도 버스에 달린 TV 모니터 속 단골 콘텐츠로 등장했다.
경기도민의 스타였던 라바는 지난해 10월 넷플릭스 오리지널(자체 제작 콘텐츠)로 제작돼 세계 190개국으로 무대를 넓혔다. 제목은 ‘라바 아일랜드’다. 대사가 없는 대신 과장된 표현과 행동으로 시청자를 웃음 짓게 하는 기존 ‘라바’ 시리즈의 특징을 그대로 살렸다. 기존 에피소드들의 공간적 배경은 뉴욕 맨해튼이었는데, ‘라바 아일랜드’는 무인도가 배경일 뿐이다. 한 회차당 길이는 7분 30초 정도다. 하나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 맞춤형 콘텐츠다.
넷플릭스는 라바의 어떤 매력이 전 세계 어린이 시청자들을 열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넷플릭스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어린이 콘텐츠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7월 2일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 사무소에서 오리지널 키즈&패밀리(Kids & Family·이하 K&F) 콘텐츠의 인터내셔널(미국 외 지역) 부문을 총괄하는 아람 야쿠비안 디렉터를 화상 인터뷰했다. 야쿠비안 디렉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사무소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의 어린이 애니, 눈 사로잡는 화려한 비주얼로 사랑받아
야쿠비안 디렉터는 먼저 "한국의 어린이 애니메이션은 시각적인 요소들이 굉장히 아름답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 뛰어난 역량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넷플릭스의 한국 제작 K&F 오리지널인 ‘라바 아일랜드’ ‘유후 구조대’ ‘로보카 폴리’ 등이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라바 아일랜드’가 사랑받은 비결에 대해서는 "시각적으로 화려한 요소들이 ‘나도 저 환상적인 세계에 들어가서 저 애벌레들과 친구가 돼서 놀고싶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줬다"면서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단순한 몸 개그나 화장실 관련 유머를 적절하게 넣어 재미를 더했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 없으나, 호주와 영국 그리고 북유럽 국가에서 ‘라바 아일랜드’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본과 한국 모두 훌륭한 크리에이터들이 많다"면서 "다만 두 나라의 크리에이터들이 강점을 갖는 애니메이션 분야가 다를 뿐"이라고 했다. 한국이 3D 애니메이션에 강하다면, 오랜 역사가 있는 일본은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 제작에 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과 일본 외에 주목하고 있는 아시아의 애니메이션 강국은 인도다. 넷플릭스는 올해 4월 인도에서 제작한 오리지널인 ‘아기 장사 빔’을 공개했다. 사자에게 대적할 수 있을 만큼 힘센 아기 이야기를 담은 미취학 아동 대상 애니메이션이다. ‘아기 장사 빔’은 인도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세계적인 인지도는 없었던 캐릭터다. 야쿠비안 디렉터는 "인도는 서구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오랜 기간 협업을 통해 실력을 쌓은 크리에이터들이 많다"면서 "이제는 자체적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볼 계획"이라고 했다.
야쿠비안 디렉터에게 LA에서 아시아 지역의 K&F 콘텐츠 관련 업무를 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묻자 "각국의 캐릭터·애니메이션 축제나 행사에 참여해 최대한 많은 크리에이터들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현지에 있는 실무진과 실시간으로 연락하면서 함께 일하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야쿠비안 디렉터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각종 콘텐츠 관련 행사에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고, 크리에이터들과 1 대 1로 만나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콘텐츠 관련 전시회 ‘서울프로모션플랜(SPP)’에 참석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콘텐츠 배웠다"…금융 애널에서 어린이 콘텐츠 총괄로
야쿠비안 디렉터가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등 어린이 관련 콘텐츠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는 투자은행에서 금융 애널리스트로 일했던 ‘금융맨’이다. 2013년 말 전략 기획 부문을 담당하는 인력으로 넷플릭스에 영입됐다. 야쿠비안 디렉터에게 ‘다소 급격한 커리어 전환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말을 건네자, "전략 기획 부서에서 분석적인 접근을 하는 데 기존 직장에서 배웠던 것들이 많이 도움 됐다"면서도 "콘텐츠 산업에 대해서는 넷플릭스에 들어와서 새로 배웠다"고 웃으며 답했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2007년 넷플릭스 이전에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분야였다.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의 성장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전에 없던 과감한 시도를 해야 했다. 그가 합류했던 2013년에는 넷플릭스가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자리를 잡고, 독일과 프랑스 진출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라별 전략을 짜야 했던 시기였다.
야쿠비안 디렉터가 합류했을 당시보다 넷플릭스는 더 성장했다. 세계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며 좋은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에게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에 대해 묻자 "동료에 대한 신뢰"라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는 정말 훌륭한 사람을 채용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일을 할 때 동료들을 전적으로 믿는다"면서 "내가 아시아 지역의 K&F 콘텐츠를 총괄하고 있지만, 의사 결정권은 현지 직원들에게 준다. 완전히 믿고 맡김으로써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