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숭실대학교 동문회는 지난달 19일 장학기금과 발전기금 모금을 위해 대규모 골프대회를 열었다. 약 300명이 모여 점심을 먹고 대회를 시작했다.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골프채를 휘두른 이 대회는 10년째 이어진 숭실대 동문회의 대표행사다. 그러나 10년 전과 비교해 새로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80년대 이상 학번 동문이 행사장을 지켰다. 행사에 참여했던 73학번 동문은 “동문행사 가려고 휴가를 쓸 젊은이가 누가 있겠느냐”면서도 “매번 같은 얼굴”이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대학 동문회가 늙고 있다. 신년회나 송년의 밤, 총회 등 굵직한 행사를 열어도 자리를 채우는 '막내 학번'은 거의 80년대 학번이다. 갓 졸업한 젊은 동문은 까마득한 선배가 즐비하고, 즐길 거리도 없는 동문회 행사에 발걸음을 끊고 있기 때문이다.

동문 간 유대감이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난 고려대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고려대 의과대학 교우회는 지난 1일 학술대회 형식을 빌려 동문행사를 개최했다. 고려대 의대 교우회 관계자는 "예년보단 4050세대 이상의 동문 참여가 많았다"면서도 "갈수록 젊은 동문의 참여가 줄어들고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1학기에 대규모 행사를 진행한 대학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5월 동문회 대상 행사를 진행한 이화여대와 건국대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건국대 동문회 관계자는 "젊은 동문의 발걸음이 끊긴 형편"이라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단체행사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0년 이상 학번 차에 공감대 형성 어려워"

젊은 동문이 동문회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학번 차이로 인한 부담감을 호소한다. 2년 전 한 차례 동문회 행사에 참가해 봤다는 김정현(31)씨는 "10년 이상 학번 차이가 나는 선배가 대부분이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학번이 높은 선배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도 부담이다. 김씨는 "사회적으로 이미 성공을 거둔 선배들과 달리 이제 막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 위축되는 기분이 들어 싫었다"며 "내 처지를 비교하며 박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이후부터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질시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특히 '좋았던 시절' 이야기 듣는 것을 싫어한다. 천선혜(34)씨는 "수업을 다 빠지고 시험만 봤는데 성적이 잘 나오고,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며 "지금은 수업 빠지면 대기업 취업은 둘째치고 졸업도 할 수 없는 시대"라고 꼬집었다.

대학가에선 딱딱한 행사를 즐기지 않는 최근 세대의 특성도 이런 흐름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본다. 경희대 동문회 관계자는 "요즘 세대는 권위적인 것을 거부하고 여행이나 공부 등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더 즐기는 세대"라며 "이런 세대의 특성도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동문은 '애교심'보다 '추억'… 동문회 변화 몸부림

이처럼 동문회의 참여가 줄어들면서 동문 문화도 변했다. SNS의 발달도 변화를 이끌었다. 한양대 동문회 한 관계자(81학번)는 "같이 학교에 다녔거나 교류했던 동문이 SNS를 활용해 친목을 다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선후배가 애교심을 매개로 모이는 종적인 유대보다 같은 추억을 공유한 가까운 동문 간의 수평적인 유대가 더 강화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한 차례도 동문회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유진웅(36)씨는 "친한 동기나 선후배끼리 만나 친목을 다지는 활동을 수년째하고 있다"며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함께했던 동아리 친구들과 대학을 방문해 후배를 만나고 필요한 물품을 십시일반 모아 돕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인식한 동문회도 소규모 모임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 성균관대 동문회 관계자(88학번)는 "점조직처럼 작은 동문모임을 서로 연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졸업 뒤 5년 혹은 10년 등 모일 만한 계기를 만들어 이를 다른 모임과의 연계를 주선하는 방식을 쓴다"고 전했다.

고려대 동문회는 젊은 동문을 임원으로 발탁해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고려대 의대 교우회 관계자는 "임원진 30여 명 중 한 명을 08학번으로 선임했다"며 "젊은 임원의 동기나 선후배가 행사에 참여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취업에 성공한 동문과 재학생을 연결하는 모임도 떠올랐다. 한국외대 동문회 관계자(90학번)는 "취업에 성공한 동문을 모아 재학생에게 취업멘토링을 하는 모임을 추진했다"며 "동문회 행사에 참여가 극히 드문 2000년대 이후 학번이 많이 참여했고 재학생들도 반응이 좋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도 위기감 공유… "든든한 지원자 잃을 위기"

이 같은 노력에도 동문회 관계자들은 한동안 동문회의 위상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대학들이 발전기금 모금에 직접 나선 것도 동문회 위상 저하를 초래했다. 동문회는 동문에게 발전기금을 모아 대학에 전달하고, 장학금 사업을 펼치면서 위상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또 대학을 졸업한 각계 명사들이 다수 모여 대학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필요한 사업 진행을 보조하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최근엔 이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한 대학 관계자는 "장학사업도 축소되는 추세고, 발전기금 모금도 대학본부가 직접 참여하면서 동문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며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각종 사업을 지원하던 동문회의 역할도 퇴색해 대학 발전의 든든한 지원자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이럴 때일수록 동문회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동민 부산대 동문회 사무국장(82학번)은 "젊은 동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동문회부터 젊어져야 한다"며 "SNS 소통을 늘려 학교와 동문소식을 발 빠르게 전달하고, 미래의 동문회원인 재학생과의 관계를 인식해 졸업 뒤 자연스럽게 동문회로 유입되도록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