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긴장한 채 침대에 누워 흘끗 시계를 본다. 시곗바늘이 천천히 12시를 넘어가고 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 너머로 지잉-지잉 어디선가 들리는 희미한 소리. 마치 장롱 속 두툼한 겨울 담요 사이에 묻어 둔 휴대폰 진동 같은 소리를 감지하는 순간 온몸의 신경이 일제히 청각으로 향한다. 벌써 일주일째 들려오는 세탁기 소리. 찰랑찰랑 회전하는 물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탈수통이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잠시 적막. 이내 다시 시작되는 세탁기 소리는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그친다. 처음 며칠간은 날이 새도록 들리더니 그나마 안도해야 하는 걸까. 밤을 지새우며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왜, 누가, 이 시간에 세탁기를 돌리는 걸까.
첫째 날에는 도대체 이런 몰상식한 사람이 누구냐며 분노를 쏟아내다가 둘째 날에는 밤마다 세탁기를 돌리는 주인공으로 추리소설을 쓰게 되더니 셋째 날에도 들려오는 세탁기 소리는 어느새 공포가 되어 버렸다. 세탁기를 만지는 건 1주일에 한 번, 40분 정도면 충분한 내게 일주일째 밤새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내용물은 도무지 풀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신고해라,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심지어 범죄영화에서 시체 탈수를 위해 사용되는 장면을 봤다는 등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주일을 그렇게 불면의 밤을 보내다가 토요일 아침 녘에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초인종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려 이내 잠이 깼다. 문을 열어보니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분이 두 손에 백설기 떡을 가득 들고 서 있다. "안녕하세요. 아래층에 살고 있어요. 네 쌍둥이 낳고 친정에서 키우다가 얼마 전에 돌이 되어서 모두 데리고 왔어요. 아기들 우는 소리나 세탁기 소리 때문에 피해가 되지는 않았나 모르겠어요."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아기 엄마의 얼굴에는 밤새 칭얼대는 아기를 등에 업고 달래야 하는 피곤함이나 수십장의 면 기저귀를 몇 번이고 세탁기에 넣어 빨아야 하는 고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새 나도 활짝 웃으며 묻는다. "어머나, 네 쌍둥이요! 이름이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