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조국 딸 논란에 "대입제도 전반 재검토하라"
말 한마디에 뒤바뀐 입시제도...정시 확대? 학종 개편?
학부모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실상은 '조국지대계'"
전문가들 "정시 급선회하면 입시 불균형 심화될 수 있어"

‘조국 발(發)’ 입시제도 개편이 예고되며 교육계와 학부모들이 혼란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조모(28)씨의 ‘특혜 입시 논란’과 관련, 지난 1일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 "조 후보자 논란의 차원을 넘어서서 대학입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달라"고 지시하자 교육부가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키로 했기 때문이다.

아세안 3개국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조 후보자는 서울대 법대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딸을 명문대에 보내며 ‘무능한 부모’들에게 심한 박탈감을 줬다"며 "그런 조 후보자를 지키기 위해 이제 입시제도까지 뒤흔들 셈이냐"며 반발했다. 교육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주문한 ‘대입 재검토’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대표되는 수시가 약화되고 정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믿지 못하는 학종에 도로 정시 확대?...교육부 "학종 제도 개편 논의할 것"
조 후보자의 딸 조씨는 지난 2010년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에 '세계인재선도전형'으로 입학하는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제기된 병리학 논문 1저자 경력과 공주대 인턴 경력 등을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제가 된 세계인재선도전형은 수능성적이나 필기시험 없이 어학성적과 학생생활기록부, 면접 만으로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의 일종으로 현재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모태가 된 전형이다. 교육부의 수시 확대 정책에 따라 소위 ‘인서울’로 불리는 서울 소재 대학들은 수시 모집 인원 60% 가량을 학종으로 선발하고 있다.

그래픽=김란희

그러나 조 후보자 딸 논란으로 학종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교육부는 문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학종 제도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상진 교육부 대변인은 "입시정책 4년 예고제에 따라 당장 큰 변동을 가할 수 없지만 학종 부조리 해소 등을 위한 세부내용 변경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교육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현재 고등학교 1학년부터 입시에서 정시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지난해 국가교육회의 결정에 따라 2022학년도 입시에서 정시 비율이 최소 30%로 규정됐지만, 각 대학에서 정시 비율을 어떻게 정할지는 내년 4월 말에야 나올 예정"이라며 "현 고1은 정시 비율이 높아지고 학종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임 대표는 "지난 몇 년간 입시 제도가 수시와 학종 위주로 운영되며 특목고·자사고·강남 명문고 등을 제외한 일반고는 수능 대비 체계가 무너진 상황"이라며 "갑작스런 정시 확대는 입시 불균형을 오히려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이번 발언의 기본 전제는 '학종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어서 그동안 학종을 준비해왔던 수험생들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면서 "교육부 차원에서 빨리 입장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당장의 입시 제도에는 영향이 없다지만 고등학교 선택을 앞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머릿속이 한층 복잡할 것"이라며 "정시가 확대되면 특목고나 자사고를 가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학부모들 "조국 한 사람 때문에 교육제도가 널뛰기 하나"
학부모들은 "교육은 백년지대계인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너무 자주 바뀐다"며 "결국 피해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몫"이라며 했다. 학부모 오모(49)씨는 "작년에 그 난리를 치면서 대입제도를 정하더니 조국 한 사람 때문에 또 바꾸겠다는거냐"며 "교육이 백년지대계가 아닌 조국지대계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김현유(49)씨는 "교육 정책을 갑자기 바꾸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이번엔 너무했다"면서 "비싼 컨설팅 비용을 댈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한 사람 때문에 제도가 널뛰기하면 우리 같은 서민 학부모들은 어떻게 따라잡겠냐"고 했다.

지난 7월 한 입사학원에서 개최한 2020 대입수시 전략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자료를 보며,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예비 고1 자녀를 둔 정모(48)씨는 "현행 입시 제도에 따라 자녀를 자사고에 입학시키려 했는데 교육정책이 바뀐다니 부담이 된다"며 "최근 논란으로 인해 정시가 공정하다는 여론이 많은데 정시도 사교육 등으로 준비를 많이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유리한 제도인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조 후보자에 대한 박탈감은 여전하지만, 정시 확대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학부모 김모(50)씨는 "학종은 조국이 아버지가 아닌 이상 허탈한 제도"라며 "가장 정직한 방법인 수능을 통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정시 확대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보수 성향 교육단체인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2일 입장문을 내고 "(문 대통령이) 이제 와서 느닷없이 대입제도가 불공정하다며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며 "문 대통령은 현행 입시제도가 공평하지도 못하고 공정하지도 않다며 교육 분야의 공정성을 제고할 것을 언급했는데, 이는 조국 후보자를 살리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단체는 "진정으로 대입 제도의 불공정함을 개선하고 공정한 대입제도를 통해 학생들에게 기회균등의 가치를 실현하려 한다면 불공정한 대입제도의 상징 같은 조 후보자부터 지명철회 해야 국민들이 문대통령의 대입제도 개선 의지를 믿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