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커트 루이스(왼쪽)와 택시기사 장철재씨.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 장씨는 “그림으로라도 집사람 옆에 서 있어 주고 싶었다”며 “이 그림 덕분에 두 다리로 서 있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작업으로 큰 보람을 느꼈다는 루이스는 “장애인 초상화 그리기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쇼윈도가 가장 무서웠다. 목발을 짚은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 장철재(62)씨가 하는 말이다. 젊을 적엔 말끔한 통유리 앞을 지날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내 결혼식 사진, 안 본 지 30년이 넘었다"며 "건강한 두 다리로 일주일만 살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커트 루이스(41·미국)는 인물화를 그린다. 이란성 쌍둥이인 동생은 위키피디아(온라인 백과사전)에 실린 유명한 화가 크리스 루이스다. 독일과 스페인에서 국제무역을 공부한 커트는 해운 회사 사무직을 그만두고 2007년 한국에 왔다.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전업 화가가 된 그는 "세상을 경험하고 미술로 돌아온 셈"이라며 "인물이 가진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두 남자는 지난해 3월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처음 만났다. 신종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전 이사장(비올리스트)의 초청을 받아 간 자리에서 인사를 나눴다. 장애인의 인간 승리 드라마가 날마다 펼쳐졌다. 장씨와 커트는 개막식과 몇몇 경기를 보고 숙소에서 다시 마주치며 친해졌다. 커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강(39)씨가 통역을 도왔다. 말이 잘 통했다고 한다. 그때 커트가 그린 '자기 구원(Self Rescue)'이라는 작품을 본 장씨 가슴에 소용돌이가 일었다. '장애인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난생처음 상상해본 것이다. 그런 그림을 부탁해도 되나 망설이면서 계절이 바뀌었다. 작년 여름, 장씨가 속마음을 털어놓자 커트는 이렇게 응답했다.

"내 그림으로 누군가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가슴 벅찬 영광입니다. 직업을 화가로 바꾸길 잘했네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14일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완성된 작품(80㎝×100㎝)을 보러 모델 겸 의뢰인이 화가 집을 방문했다. 그림 속 장씨는 두 다리로 서서 아내 손을 잡고 어떤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가 커트 루이스가 장애인 장철재씨를 모델로 그린 ‘꿈에 본 내 모습’. Kurt Lewis 제공

"나 대신 엄마 팔짱 좀 껴주라"

그는 개인택시 기사다. '경기30바6244'. 장씨가 앉은 수동 휠체어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두 손으로 직접 바퀴를 민다는 뜻이다. 경기도 화성에 사는데 쉬는 날 야구 보러 잠실야구장에 갈 때도 지하철을 이용한다고 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면 편하실 텐데요.

"다들 그러세요. 그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아직 그걸 탈 나이가 아니라고."

―완성작은 오늘 처음 보셨나요.

"사진으로는 받아봤지만 이렇게 실물을 보니 더 감격적이네요. '새로운 나'를 만난 기분입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이걸로 바꿨어요(웃음)."

―주변 반응이 궁금합니다.

"집사람은 처음에 이 일을 반대했어요. 그림 속 장철재와 현실의 장철재를 비교하며 상처받으면 어쩌나 염려한 겁니다. 32년을 같이 살아도 내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집사람은 정작 그림을 보고는 자기 얼굴이 더 멋있게 나왔다며 좋아했어요. 나야 다리만 부각되면 되고요. 하하하."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20대 때 대전에서 인쇄업을 했어요.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어느 날 직원 친구가 서울에서 놀러 왔습니다. 가게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오는데 가수 이선희를 닮은 거예요. 얼마 뒤 그 직원이 그만둔다길래 '그럼 후임으로 이선희 닮은 친구를 데려와라' 했지요(웃음). 좋아서 결혼했습니다. 사랑하면 불편한 모습이 안 보여요. 이 그림은 사실 집사람을 위한 거예요."

―네?

"집사람도 여자인데 자기 옆에 정상적인 남자가 서 있기를 바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외출할 때면 제가 '나 대신 엄마 팔짱 좀 껴주라'고 해요. 하필 나를 만나는 바람에 여느 부부가 다 하는 것들을 못 하고 살 테니 미안하죠. 그림으로라도 그 사람 옆에 서 있어 주고 싶었어요."

―왜 바로 의뢰하지 않고 오래 주저했나요.

"아닌 걸 사실처럼 그려야 하잖아요. 장애인을 장애인이 아닌 것처럼. 그게 실현 가능한 일인지, 실물을 그리는 화가에게 무례한 부탁 아닌가 싶어서."

―완성되길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진 않았는지요.

"오히려 편안했어요.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전화 한 통 안 했을 거예요."

―아주 어릴 적에 걸어다닌 기억이 있습니까.

"전혀요. 너무 어려서 장애인이 되는 바람에 꿈을 꿔도 저는 늘 장애인이었어요. 큰 거리에서 쇼윈도 앞을 지날 때 내 모습이 비치는 게 제일 싫었지요. 나이를 먹고 긍정적으로 대범하게 바뀐 거예요. 이 그림 덕분에 이제부턴 두 다리로 서 있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요."

휠체어에 앉은 장철재씨와 화가 커트 루이스. 뒤로 ‘꿈에 본 내 모습’이 보인다. 손에 든 망원경은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상징이다.

정신적으론 아주 튼튼한 사람

커트는 2014년에 전업 화가가 됐다. 동생은 "진짜 배고픈 직업"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지지해줬다고 한다. 커트의 그림에는 동·서양이 섞여 있다. 풍경을 배경으로 근대 잎을 큼지막하게 그려놓곤 '한국의 쌈채소'라 제목을 붙이는 식이다.

―어떤 작업에 관심이 있나요.

"내 예술로 한국을 알리고 싶어요. 풍경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한복판에 정물을 놓아 그 소재가 주목받게끔 합니다. 수묵화를 배운 적은 없지만 한국에서 살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해운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했습니까.

"예를 들면 이케아가 스웨덴에서 미국 뉴욕으로 실어 보낸 화물을 관리하는 일이었어요. 컨테이너 안에 든 상품들을 컴퓨터에 기입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따분했고 손목이 아팠지요. 그만두고 나서 경험을 쌓으려고 낯선 한국에 왔어요.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로 들어오는데 야경을 보고 놀란 기억이 납니다. 십자가가 너무 많이 보였거든요."

―무역과는 완전히 다른 직업인데 화가가 되고 외롭진 않았는지요.

"건강과 말수, 두 가지가 달라졌어요. 집에서 오래 앉아 그림만 그리다 보니 건강이 망가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하루는 한강변에 나가 좀 걸었는데 엄지발가락에서 피가 났어요. 또 종일 혼자 있으니 말이 없어지고 성격도 바뀌더라고요."(클라라 강씨는 '제가 커트를 산책시킨다고 하면 다들 강아지인 줄 안다'며 웃었다.)

―패럴림픽에서 장 선생님을 만났을 때 첫인상은.

"함께 스키 경기를 봤어요. 장 선생님은 '하체가 불편해도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도 배웠을 텐데' 하며 안타까워하셨지요. 후천적 장애인이 70%, 선천적 장애인이 30%라고 합니다. 치열한 삶의 축약판, 진정한 올림픽 정신은 장애인올림픽에 있더라고요."

―그림 의뢰를 받을 때는 어떤 말씀을 들으셨나요.

"장 선생님이 결혼 사진을 다시 안 보셨다는 얘기를 먼저 하셨어요. 일주일만이라도 건강한 다리로 살고 싶다는 말씀도요. 그림을 부탁하면서 많이 미안해하셨어요. 저는 발가락만 아파도 걷기 힘들었는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을 못하는 마음, 그의 좌절을 이해했습니다. 이 작업이 어떤 사명처럼 다가왔어요. '이건 그에게 아주 큰일이다(This is a big thing for him).' 내 그림으로 어떤 꿈이 실현된다면 보람 있는 일이잖아요. 장 선생님을 시작으로 장애인 초상화 그리기 프로젝트를 이어갈 생각이에요."

―작업 과정을 설명해주신다면.

"저 휠체어를 보세요. 밀어주고 싶어도 밀 수 없는 구조입니다. 장 선생님은 정신적으론 그렇게 튼튼한 분이에요. 작년 11월에 휠체어 타고 중국 장가계에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배경으로 쓰기로 했지요. 작업은 올해 2월에 장 선생님 부부를 촬영하면서 시작했어요. 저희가 결혼할 때 입은 한복이 두 분께도 잘 어울렸습니다. 키를 맞추려고 장 선생님은 책상에 앉히고 찍었지요."

이때 듣고 있던 장씨가 말했다. "저 그림에서 작가님은 나와 한 몸입니다"라고. 땅을 딛고 서 있는 두 다리는 커트 것이라는 얘기다.

―어떻게 하신 거죠?

"사진을 촬영하고 포토숍으로 제 다리를 붙였습니다. 그걸 밑그림 삼아 작업했지요. 저기 핏줄과 힘줄이 보이죠? 생동감을 더하려고 맨발로 표현했어요. 장가계는 지형 느낌만 살렸습니다. 장 선생님이 사모님을 이끌고 간 아름다운 절벽 위에서 함께 세상을 내려다보는 장면이에요."

―봄부터 여름까지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어딘가 미흡하다는 느낌 때문에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정확히 그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장 선생님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금방 잊었지요. 미국을 수천㎞ 직접 운전하며 한 달간 횡단하는 여행도 하신 분입니다.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는 '상남자(strong guy)'. 제가 생각하는 장 선생님은 저 그림 같은 모습이에요."

―제목은 정하셨는지요.

"아직요. 그림 제목이 때로는 쉽게 나오는데 이번엔 굉장히 어렵네요. (그 순간 장씨가 말한다) 저는 정했어요."

―어떻게요?

"정상인 모습을 꿈에서도 못 봤다고 제가 말했잖아요. 근데 앞으로는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그림 덕분에. 작가님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꿈에 본 내 모습' 어떤가요?"

"사랑하면 불편한 모습이 안 보여"

지난해 봄 평창패럴림픽에서 만난 장철재씨 부부와 커트 루이스 부부.

꿈에 본 내 모습. 커트는 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장애인 초상화 그리기 프로젝트의 이름으로도 쓰겠다고 했다. 작업하는 동안 알게 된 게 있는지 묻자 그는 "완성하기까지 아마도 200시간 이상 걸렸다. 한 인물을 오래 관찰하면 얼굴 주름과 모공, 점과 헤어라인까지 기억하게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두 분께 공통 질문입니다. 이 그림 전과 후,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나요.

"저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인생엔 어떤 굴곡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저 그림 덕분에 더 낙관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어요."(장철재)

"모델의 삶을 그림에 반영하는 종류의 프로젝트를 더 하고 싶어요. 장애인이 세상을 진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커트)

―장애인 초상화 그리기 프로젝트의 다음 모델은 누구인가요.

"아직 정하지는 못했어요. 지난해 만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연락하려고요."

―어떤 분인지요.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선 패션쇼에도 나왔지요. 악보를 통째로 외워서 들려주는 피아니스트예요. 장 선생님처럼 장애에 갇혀 있지 않고요. 매우 진취적입니다."

―신체적 장애가 없더라도 사람은 저마다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비장애인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요.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다 달라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장애인을 대하는 기술이 서툰 것 같아요. 말을 붙이기도 어려워하잖아요. 불편해하지 말고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장 선생님, 지금 저 그림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뭐가 보이나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제가 살아온 삶이 보여요. 지나온 길들이. 어떻게 보면 굴곡이 굉장히 많은 인생이었지요. 내 모든 게 저 아래 있는 것 같아요. 다가올 미래도 저기 녹여 넣어야죠."

―오늘 댁으로 '꿈에 본 내 모습'을 가져가나요.

"아직요. 물감이 덜 말랐고 코팅을 해야 한답니다. 9월 초에 가져가 벽에 걸어야죠. 추석 직후에 어머니 기일이 있어요. 형제들 다 모인 자리에서 그림을 보여드리려고요."

―돌아가신 모친이 보신다면 뭐라 하실까요.

"네가 어떻게 이리 건강하니? 하시겠지요. 자식이 성한 모습을 보고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날아갈 듯한 기분이실 겁니다."

―이루고 싶은 소망이 또 있나요.

"저는 젊을 때부터 '나는 성한 사람들 속에서 더불어 산다'고 생각했어요. 이웃과 사회가 도와줘 여기까지 왔습니다. 소망요? 집사람과 건강하고 재미나게 사는 거지요. 딴 거 없어요. 우리 인생, 한 번밖에 없잖아요."

장씨는 택시를 운전한다. 비록 두 다리가 불편하지만 성한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잠시나마 그들의 발이 돼준다. 하지만 이번엔 커트가 그리는 그림의 승객이 된 셈이다. 그가 도착한 곳이 '꿈에 본 내 모습'이다.

"이 그림으로 제가 새로 탄생했다고 생각해요. 친구들에게 그림 사진을 보여주며 농담했어요. 이게 내가 다치기 전 모습이야! 하하하."

일상의 작은 기적 같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