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초등학교 6학년생 민서(가명)에겐 지난 1학기가 '지옥'이었다. 같은 반 친구가 한 학기 내내 민서를 흉보며 괴롭혔다. 나중엔 그 친구 하나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가세해 집단 따돌림이 됐다.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민서만 빼고 모두에게 먹을 걸 주고, 게임에선 떼 지어 민서를 집중 공격하는 식이었다.

학교 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교육부 조사에 응답한 학생이 최근 1년 사이에 1만명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27일 발표한 '2019년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학교 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초·중·고교생은 총 6만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명 많았다. 이번 조사는 국내 초4~고3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졌고, 해당 연령대 학생 총 410만 중 372만명(90.7%)이 응답했다.

"학교 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2013년 4만7000명을 기록한 뒤 작년까지 계속 감소 추세였다가 올해 조사에서 6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가해 학생이 지난해 1만3000명에서 올해 2만200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교 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초등학교였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연소화하는 흐름이 뚜렷했다. 전체 초등학생 중 3.6%가 "학교 폭력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응답해, 중학생(0.8%)이나 고등학생(0.4%)보다 훨씬 많았다. 학교 폭력 피해자만 놓고 보면, 전체 피해자 네 명에 세 명(75%)이 초등학생, 나머지가 중·고등학생이었다.

전문가들은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결합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조사 결과, 전체 피해 유형 가운데 언어폭력(35.6%)이 가장 비중이 높고, 집단 따돌림(23.2%)과 사이버 괴롭힘(8.9%)이 뒤를 이었다. '사이버 괴롭힘'(Cyber Bullying)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온라인에서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가리킨다.

집단 따돌림을 당한 학생의 41.4%가 언어폭력을, 14.7%는 사이버 괴롭힘을 중복해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집단 따돌림이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체 폭력은 다소 주춤한 대신 SNS를 이용해 지능적으로 괴롭히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었다. 전체 학교 폭력 중 신체 폭력(8.6%)은 3년 연속 낮아졌다.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사이버 괴롭힘(8.9%)이 신체 폭력과 스토킹을 모두 앞질렀다.

사이버 괴롭힘은 점점 다양하고 집요해지고 있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채팅방에 초대한 뒤 다른 학생들이 한꺼번에 채팅방을 떠나서 망신 주는 '방폭', 채팅방으로 계속 초대해 괴롭히는 '카톡감옥' 등 새로운 유형이 계속 생기고 있다"고 했다.

채팅방에서 모두가 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카톡유령', 그 학생 실명은 거론하지 않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게 험담하는 '저격', 채팅방에 초대한 뒤 일제히 욕설을 퍼붓는 '떼카'도 아이들을 괴롭혔다. 학교 관계자는 "이런 괴롭힘은 피해 학생이 직접 신고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아 학교에서 지도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괴로움을 주는 상대는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같은 반 친구'였다. 가해자 유형 중 같은 반 학생(48.7%)이 가장 많았고, 같은 학년 다른 반 학생(30.1%), 같은 학교 다른 학년생(7.6%), 다른 학교 학생(3.2%)이 뒤를 이었다.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들은 대체로 부모 등 가족(42.2%), 교사(26.9%), 친구나 선배(10.2%)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상담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아이도 피해 학생 다섯 명에 한 명(18%)에 달했다.

교육부는 2학기에 보강 조사를 벌인 뒤 연말에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 계획(2020~2024년)'을 발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