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밥도둑' 굴비가 진화하고 있다. 명절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굴비는 전통적으로 참조기를 소금에 절인 후 바닷바람과 햇볕에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만든다. 하지만 최근 굴비를 찾는 소비자는 줄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굴비 매출 증감률(전년 대비)은 2017년 -10.4%, 2018년 -9.5%로 내림세다. 참조기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젊은 세대가 조리 과정에서 냄새가 나는 굴비를 잘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들과 수산물 가공업체들이 참조기 이외에 굴비를 만드는 어종을 확대하고, 굴비 가공 방법도 다양화하고 있다.
◇다양해진 굴비 어종
굴비는 전남 영광 법성포산(産)을 최고로 친다. 하지만 서해에서 참조기를 구경하는 게 쉽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참조기 어획량은 1363t으로 평년(2411t)에 비해 43.5% 줄었다. 참조기 시세는 전년 대비 10~20% 상승했다. 이 때문에 참조기 대신 같은 민어과(科) 물고기를 이용한 굴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참조기를 대신하는 가장 일반적인 어종이 부세다. 조기와 비슷하지만 주둥이 끝이 둥글고 몸이 더 통통하다. 참조기에 비해 크고 살이 많다. 주로 중국에서 잡은 부세를 법성포 등 국내에 들여와 가공한다. 부세 굴비는 비슷한 크기의 참조기와 비교해 가격이 3분의 1 수준이다.
부세보다 더 저렴한 어종도 있다. 아프리카 서부 해안 기니·세네갈 부근에서 잡은 '긴가이석태'로 만든 굴비다. 뒷지느러미에 '침(針)'처럼 뾰족한 가시가 달렸다고 해서 '침조기'라고도 불린다. 예전엔 '민어조기'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했다. 부세 굴비와 비교해도 30% 정도 저렴하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냉동으로 들여와 국내에서 가공하기 때문에 맛은 참조기 굴비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조기 대체 어종으로 값싼 생선만 쓰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고급 어종인 '민어'로 굴비를 만들기도 한다.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꼽히는 민어는 시기에 따라 가격이 50% 이상 차이가 난다. 수요가 적어 값이 쌀 때 민어를 대량으로 매입해 급속 냉동했다가 추석에 맞춰 해동한 뒤 굴비로 가공한다. 일반 참조기와 비교해 씨알이 굵다. 롯데백화점·이마트·홈플러스 등에서 판매하는 '민어 굴비'는 5마리(약 1.5~2.0㎏)에 12만~13만원 선. 비슷한 중량의 참조기와 비교해 30% 정도 싸다.
◇20·30세대 겨냥해 진화하는 가공법
어종만 다양해지는 게 아니다. 가공법도 여러 가지다. 현대백화점은 일반 소금이 아닌 누룩장으로 염장(鹽藏)한 굴비를 내놓았다.
쌀과 천일염, 정제수를 넣어 자연 발효시킨 누룩장에 조기를 10시간 정도 담갔다가 70여 시간 건조 과정을 거쳐 만든다. "일반 굴비와 비교해 염분이 적고 비린내가 덜 난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이마트는 말린 부세를 연잎으로 싼 '연잎 굴비'를 내놓았다. 연잎 밥을 만들 때처럼 굴비를 연잎으로 감싼 것으로, 그대로 찌거나 오븐에 구우면 연잎 특유의 향이 난다. 롯데백화점은 보통 송편을 찔 때 넣는 모싯잎을 굴비에 넣은 '모싯잎 부세 세트'를 판매 중이다.
굴비를 굽거나 찔 때 나는 냄새를 줄이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가정간편식(HMR)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마트의 '찐 부세굴비 세트'는 증기에 찐 굴비를 영하 40도에서 급속 동결해 진공 포장했다. 최근 많이 보급된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하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현대백화점의 '영광 바로 굴비 세트'도 비슷한 방식으로 가공한 제품이다. 신세계백화점 등은 굴비 살만 발라낸 '굴비채'를 선보였다. 오징어 진미채처럼 생겨 프라이팬 등에서 간단하게 데워 먹을 수 있다. 설봉석 이마트 바이어는 "비싼 가격과 특유의 냄새 때문에 굴비를 꺼리던 20·30대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재료와 가공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