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명문 클럽 리버풀과 첼시가 각각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맞붙은 15일 수퍼컵 경기. 리버풀이 2―1로 앞서던 연장 전반 9분 첼시 공격수 타미 아브라함이 골키퍼에 걸려 넘어지자 주심 스테파니 프리파르(35·프랑스)는 휘슬을 불며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평소 상대팀 공격수들을 어린아이 다루듯 튕겨내버리는 육중한 체구의 리버풀 센터백 버질 판 다이크(193㎝·92㎏)가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주심에게 다가갔고, 골키퍼 아드리안도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터키 이스탄불 베식타스 파크에 들어찬 4만2000여 관중도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함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프리파르의 단호한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거칠게 항의하던 리버풀 선수들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자리로 돌아갔다. 리버풀은 조르지뉴에게 페널티킥을 내주고 2―2 동점이 됐지만 승부차기에서 5대4 승리를 거둬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거센 항의에도… 단호한 눈빛 - 유럽축구연맹(UEFA) 수퍼컵 역사상 첫 여성 주심인 스테파니 프리파르(왼쪽에서 셋째)가 15일 리버풀과 첼시전에서 후반 34분 첼시 수비수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왼쪽에서 둘째)에게 옐로 카드를 주고 있다. 뒷짐을 진 아스필리쿠에타가 경고를 받은 뒤에도 계속 항의하자 프리파르 주심은 단호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더 이상 항의하지 말라'는 의미로 오른팔로 선을 그었다.

이날 경기는 UEFA 주관 대회 최초로 여성 '판관'이 배정돼 큰 관심을 모았다. 주심뿐만 아니라 마누엘라 니콜로시(이탈리아)와 미셸 오닐(아일랜드)의 부심 2명이 모두 여성인 것도 UEFA 역사상 최초였다. 대기심에만 남성 쿠니트 카키르(터키)가 배정됐다. UEFA 심판위원장 로베르토 로제티는 "여성 심판 3명을 경기에 배정한 이유는 오로지 그들의 실력이 좋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의 어린 여성 심판들이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프리파르 주심은 웬만한 몸싸움에선 휘슬을 불지 않았다. 치명적인 반칙이 나오지 않는 이상 경기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프리파르 주심은 무난하게 경기를 마친 뒤 "우리는 체력, 기술 모두 남자 심판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며 "오늘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기심만 남성 - 15일 UEFA 수퍼컵을 관장한 부심 미셸 오닐(왼쪽부터), 대기심 쿠니트 카키르, 주심 스테파니 프리파르, 부심 마누엘라 니콜로시.

양 팀 선수들이 프리파르 주심에게 다가가 웃으면서 축하를 건네는 모습도 중계 카메라에 자주 포착됐다. 리버풀의 판 다이크는 "심판 실력만 있다면 성별은 상관없다. 프리파르는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프랭크 램퍼드 첼시 감독은 "역사적인 장면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고, 위르겐 클로프 리버풀 감독은 "오늘이 여성 주심이 운영하는 마지막 경기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유럽 5대 남자 축구 1부리그(잉글랜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프랑스) 중에서 가장 먼저 탄생한 여성 주심은 비비아나 슈타인하우스(40·독일)다. 그는 2017년 9월 10일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과 베어더 브레멘 경기에서 역사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프리파르는 슈타인하우스에 이은 유럽 두 번째 여성 주심이다. 지난 4월 29일 프랑스 1부 아미앵-스트라스부르 경기를 처음으로 관장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남자 경기에 처음으로 나선 여성 주심은 한국인이다.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 국가대표로 뛰었던 임은주(53) 심판은 2001 FIFA 17세 이하 월드컵 미국과 프랑스의 조별리그 경기를 운영하며 세계 축구사에 이름을 남겼다.

다른 프로 스포츠 종목에서도 여성 주심의 역사는 매우 짧다. 미 프로야구에서는 1972년 마이너리그 경기(제네바 세나토어-어번 트윈스)에 나섰던 버니스 제라 주심이 있지만, 메이저리그 경기 중에선 아직 여성 주심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미 프로농구(NBA)는 1997년 밴쿠버-댈러스 경기를 여성 바이올렛 파머 주심에게 맡기며 처음으로 여성 주심에게 문을 열었다. 미 프로풋볼(NFL)은 2015년 세라 토머스를 첫 여성 상근 심판으로 채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