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상업화 폐해로 거론되는 실제 사건이 몇 있다. '고니시 사건'도 그중 하나다. 2001년 미국 미네소타주 들판에서 동사(凍死)한 일본 여성 고니시 다카코의 사연. 당시 미국 언론은 그녀가 영화 '파고'를 본 뒤 현실과 영화를 구분하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영화 속 캐릭터가 돈 가방을 숨겨놓은 위치에 실제 돈 가방이 있으리라 믿고 이 먼 곳까지 와서 헤매다 동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달랐다. 고니시는 '파고'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미국인 남성에게 실연당한 뒤 그와 추억이 깃든 장소를 찾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해당 지역 경찰의 무책임한 추측성 발언이 미디어에 선택돼 기이한 사연으로 둔갑했을 뿐이다.
극도로 상업화된 언론이 추구하는 방향은 곧 '대중이 원하는 방향'이다. 그런데 언론에 대한 대중의 요구란 이중적이다. 자신과 가까운 문제엔 냉철함을 요구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멀어 보이는 문제엔 그저 흥미롭고 감성적으로 와 닿는 쪽을 선호한다. '고니시 사건'은 '먼 쪽'이었다. 자신들과 관련 없는 먼 동양에서 온 이방인 사연. 빤한 멜로 드라마적 '팩트'보다 엉뚱하고 기이한 '픽션' 쪽이 그렇게 선택됐다.
'고니시 사건'의 후일담은 다소 허탈하다. 언론 보도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등장하긴 했다. 그러나 철저히 무시당했다. 얼마 뒤 저 오보(誤報)에 기반한 영화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가 등장한다. 영화는 정반대로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 출발 자체가 뉴스가 아닌 엔터테인먼트였으니까.
언젠가 엔터테인먼트와 관련 없는 분야의 질문을 어느 기자로부터 받은 적 있다. 그때 저 '고니시 사건'을 들려줬다. 특정 분야 전문 인력도 자신과 먼 분야를 놓고선 뜬구름 잡는 얘길 할 때가 많다고. 멀면 멀수록 대중이 환영할 논리만 따르게 된다고. 그렇게 '먼 의견'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현실과 영화를 혼동한 동양 여성' 사연도 만들어지는 법이다. 영화 각본으로나 어울릴 얘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