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산 채로 불태운 도살업자…中伏 앞두고 입건
제보 받은 동물보호단체 현장 급습으로 발각
"동네 주민이 잡아 달라고 해서…" 경찰 진술
경찰, 조만간 기소 의견으로 檢 송치 예정
"개를 어떻게 산 채로 태워? 빨리 내려, 빨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 가스 토치 소리와 함께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갈고리에 꽂혀 공중에 매달린 개의 형체대로 노란 불꽃이 타올랐다. 개는 괴로운듯 꿈틀거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잃었다. 불 태워지고 있던 개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살아 있는 개가 공중에 매달려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 내리던 지난달 21일 새벽 4시 30분쯤, 충남 천안시에 있는 한 개농장. 살아 있는 개를 불에 태워 잔인하게 도살하는 이곳을 ‘동물과의아름다운이야기’·‘케어’ 등 동물단체 소속 회원 9명이 급습했다. 중복(中伏)을 하루 앞둔 일요일이었다. 이들은 "복날마다 이곳에서 너무 많은 개가 화형을 당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모였다. 인근 야산에서 비를 견디며 쭈그린 채 잠복한 지 3시간, 농장주 한모(55)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원들은 불길을 목격한 지 15초만에 한씨를 덮쳤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어리둥절해 하던 한씨는 사람들의 고성이 이어지자 죽은 개를 갈고리에서 빼내 농장 뒤편으로 숨겼다. 그가 도망간 틈을 타 회원들은 바로 옆에 매달려 있던 개를 끌어내렸다. "야! 살아 있어!" 한 사람이 외쳤다. 죽은 개를 숨기고 돌아온 한씨가 나머지 개마저 빼돌리려고 하자, 회원들과 한씨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1분여 짧은 난투극 끝에 회원들은 개를 한씨에게서 떼어냈다.
회원들은 털이 검게 그을린 채 경직된 개를 바닥에 눕히고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2분쯤 뒤, 미동도 없던 개가 눈을 뜨고 헐떡이기 시작했다. "얘, 살았어! 괜찮아, 괜찮아"하는 안도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동물단체 회원들에게 붙잡힌 한씨는 농장에 갇혀 있던 개 약 100마리의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했다. 그는 작업복인 방수 앞치마를 채 벗지도 못하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체념한듯 연신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댔다.
회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천안 서북경찰서 경찰관들이 새벽 5시쯤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한씨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현장에는 개 100여마리가 좁은 철창에 갇혀 있거나 목줄에 묶이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고, 쓰레기와 썩은 음식, 배설물 등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 도살 작업대는 철창에 갇힌 개들도 잘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공중에 목을 매달 거나 산 채로 불에 태운 것 모두 ‘잔인한 방법’에 해당 돼 동물보호법 위반이 된다"고 설명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한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날 중복을 맞아 동네 주민이 잡아달라해서 5만원을 받고 잡아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한씨가 20여년 경력의 개 도살업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주로 캄캄한 새벽 시간에 작업이 이뤄졌으며, 하루 평균 4~5마리의 개가 이곳에서 도살돼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중에는 이같은 사실을 알고 난 뒤 큰 충격에 빠져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이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경기 인근에서 30년 가까이 보신탕 가게를 운영해 온 한 업주는 "옛날부터 정석대로 개를 도살하는 방식보다 (산 채로 불 태워 껍질을 벗기면) ‘불맛’이 난다는 말이 있다"며 "일부 구매자들이 찾다보니 한씨가 그런 방식으로 도살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하는 즉시 한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동물단체 측에서 다른 혐의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수사가 길어졌다"며 "추가 고발 건에 대해 검토한 뒤, 한씨의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