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 인터넷 게시판에서 공유된 이미지 파일. 옥상에 중계기 설치를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중계기는 인체에 유해할 만큼의 전자파를 뿜지 않는다"고 했다.

#1 지난 6월 경기도 화성의 한 신축 아파트, 지병이 있던 80대 여성이 의식을 잃었다. 가족의 응급 전화를 받은 구조대원은 자주 사용하던 영상 통화 기능으로 대처법을 알려주려 했지만 전화가 계속 끊겼다. 끊김 현상은 10번 이상 반복됐고 결국 유선 전화를 통해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성을 바로 응급실로 옮겼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소방 관계자는 "심정지 환자는 골든 타임이라는 직후 3~4분이 중요하다. 만약 영상 통화가 원활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2 같은 달 경기도 시흥에 사는 김모(39)씨는 전화가 터지지 않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30분가량 갇혀 있었다. 김씨는 비상벨에 응답이 없자 휴대전화로 경비실에 연락하려 했지만, 신호음이 울리지 않았다. 무선 데이터도 현저히 느려져 누군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주민 신고로 구조된 김씨는 "할 수 있는 건 손잡이를 잡고 벽에 붙어 있는 일뿐이었다"며 "유치원생인 아들이 이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일수록 통화가 어렵다. 기술 문제가 아닌,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신님비(新nimby) 현상' 때문이다.

어디서나 높은 음질로 통화할 수 있는 것은 통신사 전파를 증폭해 주는 중계기 덕분이다. 그러나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에는 중계기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자파가 많아 해롭다는 이유로 설치 예정 건물에 사는 주민이 "왜 하필 우리 머리 위냐"며 반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하지만, 중계기 설치는 신축 아파트 주민 회의의 단골 소재다.

경남 거제의 아파트에 사는 주모(35)씨는 딸이 지내는 방에 휴대폰을 둔다. 직업 특성상 퇴근 뒤에도 전화를 받는 일이 잦은데, 거실이나 안방에서는 전화가 안 터지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 중계기 설치 의견이 갈려 서너 달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주씨는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카톡 등 메신저로 연락하지만, 모르는 사람 대부분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온다"며 "딸에게 곧 사춘기가 올 텐데 앞으로는 어디서 통화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중계기 설치가 지연되는 아파트 단지의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항의가 무서워 (주민들이 결론을 내릴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남양주의 한 관리사무소에는 만삭 임신부가 망치를 들고 찾아와 "우리 동 위에 중계기를 설치한다면 아이와 함께 죽겠다"고 소동을 부리기도 했다. 해당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들끼리 의견을 모아야 하는데, 서로 양보하지 않으니 애꿎은 곳에 불똥이 튈 때가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계기가 내뿜는 전자파의 유해성은 '도시 괴담'에 가깝다는 의견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에 따르면 모든 중계기는 전 세계의 생체 영향 연구 결과를 토대로 마련된 전자파 인체 보호 기준을 만족해야 사용할 수 있다. 서비스에 따라 적게는 40 V/m(미터당 볼트·전자파 측정 단위)에서 61V/m를 넘으면 안 되는데, 매년 실시하는 전자파 강도 측정 결과 전국 중계기의 98% 이상이 1/10 미만의 수치를 기록 중이다. 과기부 산하 국립전파연구원 관계자는 "중계기 미설치 아파트 현황은 따로 없지만, 많은 곳이 설치를 미루고 있다"며 "전자파 측정 결과를 제시해도 소용 없다"고 했다.

설치가 지연될수록 사고 위험성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축 아파트는 대부분 일선 119안전센터와 멀리 있어 빠른 대처가 필요하지만, 통화가 안 돼서 더 느리다는 것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응급 상황에서는 빠른 신고와 초기 처치가 중요하다. 통신 불량이면 두 가지를 전부 못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