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입니다. 추가로 권리금 있습니다. 제가 들어오며 내부 페인트 및 바닥 공사, 욕실 페인트 공사 등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에어컨, 냉장고, 전자레인지와 인테리어 비용까지 150만원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월세방에도 권리금이 등장했다. 가게를 뺄 때 장사가 잘된다는 이유로 세입자 간 주고받는 권리금처럼 거주용 월세방에 살던 세입자가 다음 세입자에게 방을 넘기며 받는 웃돈이다.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 자신이 설치한 에어컨, 세탁기, 큰 장롱 등의 가구를 패키지 상품처럼 묶어 다음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받고 파는 경우가 흔하다. 요즘은 전·월세방이라도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인테리어를 하는 시대.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에는 세입자가 돈을 들여 한 벽지·타일 등 인테리어 비용을 권리금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세입자에게 양도하는 공고까지 나타났다.

월세방 권리금은 아는 사람만 안다. 발품을 팔아 전·월세방을 구하러 다녔더라도 공인중개사를 통해 가전과 가구가 갖춰진 '풀옵션' 방을 구했다면 권리금의 존재를 모를 수 있다. 싸게 방을 구하기 위해 '옵션'이 없는 방을 찾고, 중개료를 아낄 수 있는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로 방을 찾는 사람들이 '권리금'을 발견한다. 권리금에 합의하는 사람에게 우선으로 방을 넘긴다고 명시한 경우가 많다.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와의 거래가 위험한 것을 알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권리금을 내기도 한다.

월세방 권리금이 불법일까. 서진형(경인여대 교수)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월세방 권리금이 불법은 아니다. 현 세입자와 다음 세입자 두 사람 간 계약의 문제"라고 했다. 박영민(25)씨는 서울 강서구에서 옥탑방을 구하며 전 세입자에게 권리금 13만원을 내고 세탁기, 냉장고, 신발장을 양도받았다. 지난해 11월 1년간 살던 방을 빼며 다시 권리금 13만원을 받고 다음 세입자에게 가구를 넘겼다. 월세 25만원의 절반 정도다. "권리금을 내는 사람과 계약한다고 공고에도 적었으니까 협의가 된 거죠. 3층이니까 가전 올리려면 크레인 써야 하고 새로 세탁기 사기도 귀찮아서요."

하지만 월세방 권리금에 '보장'은 없다. 장모(20)씨는 마음에 들게 직접 방을 고치려는 생각으로 올 4월 서울 광진구의 낡은 옥탑방을 월세로 구했다.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들여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주방 가구도 바꿨다. "계약할 때 집주인에게 인테리어 해도 되느냐고 물어봐서 허락을 받았어요. 그런데 사정이 생겨 나가려고 하니 집주인이 원상 복구해놓으라고 해서 싸웠어요." 장씨는 지난 6월 다음 세입자를 찾는 공고를 올리며 권리금이 없다고 적었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비용의 절반 정도는 권리금으로 받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권대중 교수는 "세입자가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해도 주인 허락이 없었다면 주인은 원상회복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또한 세입자가 방에 돈을 투자해서 집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주인이 그 돈을 낼 의무는 없다"고 했다.

권리금 명목으로 여러 중고 물품을 한 번에 거래하는 경우, 각 물품의 상태나 적절한 비용을 확인하기 어려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세입자가 100만원을 주고 에어컨을 달고 3년 썼다면 그 권리금은 10만원일까, 50만원일까, 100만원일까. 상가의 경우, 시설의 감가상각이 관행화돼 있어 큰 문제가 없지만 월세방 시설은 감가상각에 대해 자의적인 부분이 있다"고 했다. 가전제품의 경우 사용연한이나 감가상각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이 직전 세입자에게 낸 권리금 그대로 양도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월세방 권리금 거래에서 세입자들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임대인인 집주인과의 협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심 교수는 "집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세입자는 시설을 설치할 때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거나 나중에 돌려줄 수 있는지 협의해야 한다. 새로 계약하는 세입자는 권리금이나 원상회복 의무, 현재 물건의 상태 확인 등을 전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과 협의하고 꼼꼼하게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