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경제정책 실세인 피터 나바로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6일(현지 시각) 폭스뉴스에 출연해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 금리를 연말 전에 최소 0.75%포인트 또는 1%포인트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2~2.25%인 기준금리를 1% 초반대로 끌어내리라는 것이다. 정부 관료가 중앙은행에 구체적인 금리 수준을 들이대는 것은 이례적이다. 나바로의 이 발언은 보스인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받든 것이다.

트럼프는 전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전 트위터에 "연준은 듣고 있나? 이것(중국의 환율 조작)은 앞으로 중국(위안화 가치)을 매우 약하게 할 중대한 위반이다"라고 썼다. 중국이 환율을 조작해 이익을 보고 있으니, 연준도 금리를 내려 달러 가치를 약하게 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힘을 보태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7일에도 트위터에 "우리의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연준"이라며 "연준은 더 많이, 더 빨리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 지금 당장 터무니없는 양적 긴축을 중단해야 한다"고 썼다. 트럼프는 작년 11월에도 "중국보다 더 큰 골칫거리는 연준"이라고 했다.

미·중 무역 전쟁이 통화 전쟁으로 격화하는 와중에, 미국 국내에 또 다른 전선(戰線)이 형성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달러라는 혈액을 펌프질하는 심장 역할을 해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는 '금리 전쟁'이다.

트럼프가 2017년 11월 파월을 의장으로 지명할 때만 해도 이런 전선을 상상하지 못했다. 파월을 의장으로 택한 건 그가 자신의 저금리와 금융 규제 완화 기조를 따를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파월이 '(트럼프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평가(뉴욕타임스)가 많았다. 트럼프는 파월 지명 후 기자들에게 "파월은 강하고, 헌신적이고, 영리하다"고 추켜세웠다.

트럼프가 파월을 공개 칭찬한 것은 이때뿐이었다. 파월은 트럼프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파월의 연준은 미국 경기 호황을 반영해 지난해 3·6·9월에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높였다. 금리가 낮아 돈이 시중에 넘쳐나야 재선에 유리한 트럼프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직전 주가가 급락하자 연준이 시중 돈을 다 빨아들였기 때문이라며 "연준이 미쳤다고 본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트럼프의 공격에도 파월의 연준은 12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더 올렸다.

임기 중 경기 부양을 노리는 대통령과 불필요한 경제 거품을 경계하는 연준 의장의 대립이 드문 일은 아니다. 카터 행정부와 레이건 행정부에서 의장을 지낸 폴 볼커는 회고록에 "백악관 비서실장이 '대통령은 연준이 선거 전에 금리를 올리지 말라고 명령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고 썼다. 하지만 트럼프처럼 공개적으로 거칠게 금리 인하를 요구한 것은 전례가 없다.

지난달 말까지 트럼프는 인터뷰나 트위터 등에서 파월 의장과 연준을 40차례 공격했다. 그러나 트윗 한 줄로 고위 관료를 날려버리는 트럼프도 파월을 어쩌지 못한다. 연준법에는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할 법적 근거가 없다. 백악관이 지난 2월 파월을 날리기 위해 법적 검토를 했지만 이 때문에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도 트럼프 압박에 굴복하지 말라며 공화당원인 파월을 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등 전 연준 의장 4명은 월스트리트저널 5일 자에 "미국은 독립적인 연준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공동 기고문을 게재해 파월에 힘을 실었다.

파월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달 하원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당신 해고야. 짐 싸서 나가라'라고 한다면 뭐라고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노(No)'다. 법으로 정해진 내 기한은 4년이며, 나는 그걸 다 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파월에 대한 트럼프의 공세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중국과 통화 전쟁을 개시한 트럼프는 금리 인하가 더 절실해졌다. 연준이 금리를 내려 줘야 싼 금리의 자금이 시중에 돌고, 주식시장으로 돈이 흘러들어 주가가 오르고, 달러 가치가 떨어져 미국 제품의 수출이 늘고 트럼프의 대중(對中) 추가 관세가 위력을 발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거친 공격을 파월이 끝까지 외면하지 못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파월은 지난달 "향후 리스크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보험성' 인하"라고 전제하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미 연준의 통화정책 유턴이 경기 하강에 대비한 '보험성 금리 인하'라고는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부 입김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