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구텐베르크(1398~1468)의 금속활자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힌다. 유럽 전체의 정치·사회적 변혁을 가져왔으며, 인쇄물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됐다. 1455년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섰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은 직지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을까.
김진명(61) 장편소설 '직지'(전 2권)는 이런 질문에 답한다.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둘러싼 중세의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피상적인 서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치밀한 자료조사와 프랑스 등 현지 취재, 그리고 현대과학 성과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했다. 직지와 한글이 지식혁명의 씨앗이 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소설은 현재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조선 세종대와 15세기 유럽으로 시공간을 넓혀간다. 평온한 주택가에서 경악스런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피살자는 고려대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형우 교수다. 시신이 귀가 잘려나가고 창이 심장을 관통했다. 드라큘라에게 당한 듯 목에 송곳니 자국이 선명하다. 사회부 기자 기연은 중세풍의 기괴한 살해방식에 의문을 품고 사건을 파고든다. 전 교수가 죽기 전 교황청의 비밀 수장고에서 발견된 편지를 해석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용의자를 좁힌다.
하지만 범행동기와 살인현장이 매치되지 않는다. 기연은 원점으로 돌아가 사건현장을 살피다 교수의 서재에서 두 개의 이름을 발견한다. 전 교수가 계획했던 동선을 따라 그들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상상도 못한 반전과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다.
"원래 귀를 자르는 형법은 오로지 로마의 종교재판소에서만 행해졌소. 그런데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교황클레멘스 9세가 신의 목소리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듣는 거라는 교시를 내린 이후 이 형벌은 종교재판소에서 자취를 감추었소."
"그는 도대체 어떤 비밀을 건드렸을까. 스트라스부르와 아비뇽까지 달려온 내가 전 교수보다 못할 것이 없다. 그런데 그가 다가선 비밀이 보이기는커녕 그게 뭔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어떤 경로로 비밀에 다가섰고, 나는 짐작조차 못하는 걸까. 그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게 뭐란 말인가."
김 작가는 "나는 종종 최고(最古)의 목판본 다라니경,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꼽는 최고(最高)의 언어 한글, 최고(最高)의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지식 전달의 수단에서 우리가 늘 앞서간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한국문화가 일관되게 인류의 지식혁명에 이바지해왔다는 보이지 않는 역사에 긍지를 느끼게 된다"고 했다. 1권 280쪽·2권 272쪽, 각권 1만4000원,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