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장소

우리에게는 삶을 떠받칠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일터 혹은 학교에 이어 목적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제3의 장소의 중요성을 분석한다.

사람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본연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 끊임없이 가정과 학교, 일터 밖에서 다른 활동을 추구한다. '제3의 학교' 저자인 레이 올든버그는 이를 '비공식적 공공생활'이라고 칭한다. 여기에 필수적인 요소인 공간을 '제3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삶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거의 의식하지 못한 장소의 사회적 가치를 발굴해 의미가 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공동체 상실이나 고독감의 원인은 제3의 장소 쇠퇴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거주민의 의견과 삶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계획이 어떻게 황폐하게 만들었는지 고찰하고, 제3의 장소를 복원해 공동체를 되살릴 희망을 찾는다.

'제3의 장소'는 1989년 초판이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북 리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1999년 개정판이다. 시간적 거리감이 무색할 만큼, 책이 묘사하는 상황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일치한다. 획일·대형화를 추구하는 도시계획 및 건축, 공공시설 축소, 공동체 상실, 작은 가게들이 맥없이 사라지는 현상 등 부작용을 겪고 있다. 여러 세대가 어울릴 만한 곳이 없고, 계층 간 갈등이 심해졌으며, 거주민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도 쇠퇴했다.

최근에는 독립서점, 마을공동체, 다용도 카페 등 현대판 제3의 장소들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이는 제3의 장소를 가정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도피처, 도덕관념이 흐려지는 곳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저자는 제3의 장소가 지역사회를 구축하는 기능을 한다고 역설한다. 제3의 장소는 '통합'의 기능이 있다. 활발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모두 서로를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공동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누구에게 어떤 정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사 온 새 이웃은 물론 국경을 넘은 이주민 등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이는 '동화' 기능도 있다. 아무 거름망 없이 폭넓은 계층이 모이지만, 결국 서로 통하는 지점을 찾아내 다른 형태의 모임을 만들어낸다. 바로 '분류'의 기능이다. 제3의 장소는 '본부'로서 지역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중요한 사고에 대응해야 할 때 집단적 행동의 거점이 된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기능은 '재미'다. 어떤 지위를 갖고 있든 제3의 장소에서는 재미있는 대화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 김보영 옮김, 464쪽, 2만6000원, 풀빛